묵상자료 7238호(2021. 3. 11. 목요일).
시편 시 138:7-8.
찬송 34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마음에 걸린 일이, 내일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 일은 좀처럼 없다. 따라서 잠자리에 들 때, 대개 고민에 대해서는 안심하고 자신에게 이런 말을 들려 줄 필요가 있다. 너는 전력을 다했어.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니.” 윌리엄 쿠퍼가 남긴 말입니다. 윌리엄 쿠퍼는 1731년에 태어난 6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영국의 시인입니다. 윌리엄 쿠퍼는 주로 일상생활의 기쁨과 슬픔을 담아내는 시를 썼고, 자연을 묘사하는 표현에 뛰어났습니다. 또 가난하고 세상에 짓밟힌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남겼는데요. “흘러가는 인생에 꽃을 주고 빛과 향기를 주는 것은 자유 뿐, 그것 없이는 우리는 잡초일 뿐이다.” “그는 시골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그가 시골이 좋아지는 것은 도시에서 시골에 관해 배우고 있을 때다. ” “부귀에는 날개가 달려있고, 권세는 어느 날 밤의 꿈이다.” 하지만요. 정작 쿠퍼 자신은 그다지 자유롭지도 않았고, 가난에서 벗어나서 홀가분한 삶을 살지도 못했습니다.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고 홀로 기숙학교에 들어가 법률공부를 마친 쿠퍼는, 정신 불안증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평생 정신 불안증에 시달립니다. 법률공부를 한 그에게 가문에서 행정관직을 가지라고 강요하자, 쿠퍼는 걱정스러운 나머지 자살을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18개월 동안 정신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결혼도 쉽지 않았는데요. “너는 전력을 다했어.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니.” 라는 말. 쿠퍼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2월 9일 방송>
2. “내가 바로 그리스도이다(21-30절)”을 읽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메시아 비밀 사상”이라는 교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후에 부활하신 사건이 있기 전에는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비밀에 붙이시려 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말씀을 뒷받침하는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우리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뒤늦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범위에서 예를 든다면, 송아지나 병아리가 태어나자마자 몸의 중심을 잡고 걷는다던지, 먹이를 위해 어미의 젖꼭지를 찾는 모습이 인간과는 사뭇 대조적이었습니다. 이에 비해서 갓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가 젖꼭지를 물려주어도 빨지를 않고, 젖을 짜서 입속에 넣어준 다음에야 입맛을 다시는 정도였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꾸려가는 데는 적어도 18년 이상, 또는 평생 철이 들지 않은 채 유아기적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들도 세상에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예수가 누구신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사건(십자가와 부활)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는 오해와 곡해 투성이가 될 것이기에, 적어도 그때까지는 메시아 비밀에 붙여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개서를 만들어서까지, 가장 지혜로운 영장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자신의 비극적인 죽음을 인지하는 가장 불행한 영장류에 해당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인류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해 오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내가 그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와 같이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으리라.”고 말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자력에 의한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한다는 말에는 회의적이고 부정적입니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철학자 파스칼은 저 유명한 <파스칼의 노름>을 통해서 믿는 것이 믿지 않는 것보다 +무한대 가치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으니, 이성적으로 그 편을 택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니 파스칼의 도움 없이도 우리를 믿음 가운데로 인도하신 것은 가장 큰 축복이겠습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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