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07(2021. 5. 19. 수요일).

시편 시 4:7-8.

찬송 3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도 힘든데요.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해도 될까 말까 한 그런 일을, 그것도 여러 분야를 동시에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정치인, 과학자, 소설가 또 시인으로서 명성을 날려고요. 그리고 레오나르드 다빈치, 빼 놓은 수 없겠지요. 그는 위대한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발명가였습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시골인 빈치 마을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살면서 동물을 사랑했고, 악기 연주와 노래를 즐긴 감성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기독교의 박애주의가 넘치는데요. 하지만 그는 대략 살상 무기를 개발한 기술자이기도 합니다. 간혹 어떤 천재들은 모순적인 삶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양극단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그가 개발한 전쟁 무기를 평화주의자였던 그와 어떻게 연결시켜야 되는 걸까요? 교회부속 수도원 건물에 <최후의 만찬>을 그리면서, 수도원 장갑차나 화염포를 개발했고, 피렌체의 비단장수 지오콘도의 아내를 모델로 <모나자리자>를 그리면서 잠수함과 또 자전거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의 프로펠러, 움직이는 다리와 같은 과학적인 업적이 대단한데요. 레오나르도가 이런 발상을 적어 놓거나 그려놓은 그 노트가 수천 장이라고 합니다. 그는 기술 발전이 인간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한 예술가였습니다. 신의 은총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노력해서 운명을 바꾼다는 것,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의 정신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전형적인 르네상스인 이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 레오나르도를 떠올린다면 조금 위안이 될까요? 그래, 그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도 내 스스로 노력으로 해서 운명을 한번 바꿔보자. 이런 마음가짐을 <레오나르도 효과>라고하면 어떨까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520일 방송>

 

2. “멜기세덱의 사제직(1-17)”을 읽었습니다. “정의의 왕이란 뜻을 가진 살렘의 왕이며 제사장으로,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람을 축복하고 십일조를 받은 최초의 제사장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14:18-20). 히브리서 기자는 이 멜기세덱을 제사장이며 왕이신 그리스도의 예표로 소개하였습니다(5:6-10 ). 멜기세덱과 예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닮았다는 점인데, 부모도 족보도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점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점들은 히브리인들이 예수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결정적인 약점에 해당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성령 잉태설과 아브라함보다 앞서 존재했다는 주장들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분명한 점은 두 분 모두 영원한 사제직을 맡아 보는분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사제직을 맡을 자격이 없는 분들이라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은 가나안을 정복할 때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해서 사사를 우두머리로 하는 장로제의 지방자치제를 수립하였습니다. 그런데 레위지파에게만은 땅을 분배하지 않고 그들을 제사장의 지파로 세워, 12지파로 하여금 십일조를 받아 생활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 열두 지파는 레위를 대신해서 요셉 계열에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각각 한 지파씩 분배받은 것입니다(13-19).

   문제는 멜기세덱은 열 두 지파가 생기기 전에 존재했던 분이고, 예수님은 레위 자손이 아니라 유대 지파라는 점입니다. 사제직을 수행할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세 가지 이유로 이 두 분의 사제직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멜기세덱은 레위가 아직 출생하지 않은 때에 계셨던 분이고, 둘째는 레위의 사제들은 다 죽어야 할 운명이지만 멜기세덱은 영원히 살아있는 사제라는 점, 그리고 셋째는 레위의 사제제도가 불완전한 것에 비해 멜기세덱의 사제재도는 완전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예수님도 동일하다 하겠습니다. 어쩌면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 당시에 이미 신앙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었던 사제들에 대한 매관매직의 폐해를 알고 있었으며, 그고 인해서 사제의 정통성을 확립할 요구를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뜸해졌습니다만, 2000년 초반만 해도 미국 교회 담임목사 지원자에 대해서 한국 신학교 졸업여부를 문의해 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출신 배경을 알 수 없는 가짜 후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확실한 사제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히브리인들에게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메시아임을 밝히는 대목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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