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05호(2021. 5. 17. 월요일).
시편 시 4:3-4.
찬송 49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겨울 러시아의 체감 온도 몇 도 더 떨어트린 독재자 스탈린, 냉혹한 겨울 공화국의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그의 제국에서 싱싱한 생명의 꽃들은 다 얼어붙었습니다. 모스크바의 크레믈린 궁에 깊숙이 들어앉아 잇는 스탈린은, 지난 세기의 대표적인 독재자이자 냉혹한 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또 그때부터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기도 하는데요. 그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생명의 꽃인 사랑이야기요. 스탈린의 아명은 <소소>였습니다. 청년시절까지 사람들은 그를 <소소>라고 불렀지요. 그레지아 출신 청년 소소는 20세기 초 격동의 시대에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혁명가가 됩니다. 그는 노동운동의 선봉에 서고, 그 때부터 경찰의 표적이 되는데요. 그가 27살 때, 경찰의 쫓기는 몸이 돼 잠시 숨어 지내던 은신처에서 첫 사랑인 <카토>를 만납니다. 성직자가 되고 자 했던 스탈린은, 매력적이고 유머가 넘치는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카토>를 위해서 시를 읊었고, 또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심지어는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해서 여인을 웃게 했다고도 하는데요.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또 혁명가의 위험한 삶을 살면서도, 아내에게만은 더 할 수 없이 스탈린은 부드럽고 세심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향한 경찰의 추적은 집요해지고, 또 카토는 혁명가의 아내가 돼 가난과 외로움으로 늘 고생만 하면서도 소소가 경찰에 잡히지 않기만을 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병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스탈린이 급히 달려 왔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가 보고 있는 가운데 눈을 뜨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스탈린은 아내의 눈을 감겨주며, 안고 울다가 기어이 실신을 했습니다. 그들이 같이 산 세월은 고작 16개월 밖에 안 됐는데요. 그것도 항상 경찰을 피해 다녔으니까, 둘은 얼마나 같이 지냈을 까요? 이 일을 겪고 난 <소소>는 훗날 피의 숙청을 일삼아 러시아와 전 세계를 꽁꽁 얼어붙게 한 무서운 독재자가 됩니다. 그녀와 살았더라면 그의 인생이 바뀌었을까?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글쎄요. 사람의 인생과 역사에 가정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생각하면서, <소소>라는 이름과 <카토>라는 이름을 노트에 적어 뒀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5월 18일 방송>
2. “배반에 대한 경고2(1-12절)”을 읽었습니다. 가끔 제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 중에, 언제쯤이면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죽기 전에는 성숙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고, 경험도 웬만큼은 한 것 같은데도 여전히 미숙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바라보는 히브리인 기독교자들의 모습이 이와 같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야훼 하나님을 잘 알고 있고, 예수의 공로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필요할 때마다 유대적 율법주의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히브리인들을 초보적인 교리에만 머물러 있다 말한 것입니다. 마치 학교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드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진리의 바다를 헤엄치게 할 강의실과 도서관에서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스스로 깨우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스승이 필요한 것입니다. 꿈을 품게 하고, 진리를 찾는 기쁨을 소개하고 용기를 줄 스승 말입니다. 사랑하라는 말과 함께 사랑을 느끼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스승 말입니다.
성숙한 인간에 대해서는 유교의 가르침이 훌륭했습니다.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은 단순히 글을 익히는 차원만이 아니라, 삶의 이치를 깨우치도록 가르친다는 점에서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모세 5경을 읽히며 그 의미를 설명하듯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원론적인 이해에서 그치고 만다면, 다시 말해서 진리가 삶에서 적용되고 응용되지 않는 다면 초보에 머물고 만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지 않을 때 죽은 교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움으로 성숙한 신앙생활에 들어서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하늘에 산 소망을 두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배반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을 박는 삶을 살고 있다면, 두 번 다시 회개하거나 새 사람이 될 희망이 없을 것이라 한탄합니다. 이런 현상은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공언하면서도, 여전히 예수의 공로가 아니라 인간의 공로에 의지하는 율법주의에 매달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인간의 자기 공로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평생을 살아갈지 모릅니다. 가장 성숙한 신앙이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의 공로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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