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23(2021. 6. 4. 금요일).

시편 시 8:6-9.

찬송 24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슬라바 심보르스카는 폴란드가 자랑하는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입니다. 올해 2월에 88새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폴란드에서 너무나 큰 문화적 손실이라며 애도했던 시인이었지요. 심보르스카는 무엇보다, 시에 모차르트와 베토벤이라는 엄청난 헌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시가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를 가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모차르트의 음악과 베토벤의 함께 듣듯이 그의 시 <두 번은 없다>를 읽어봅니다. <두 번은 없다> 이슬라바 심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 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으로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별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 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66일 방송>a.

 

2. “룻이 보아즈와 결혼하다(1-22)”을 읽었습니다. 요즘 코비드19가 사람들을 집콕으로 만들고 있는 답답한 생활을 넷플리스의 도움으로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인에게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외국인 비평가는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로, 남성중심의 활극인 서양 드라마에 비해서 한국 드라마는 감성중심 가족 중심의 따뜻함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해피 엔딩이 좋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이 흐르듯 당연한 진행과 결말을 가진 한국 드라마는 억지를 부려서 파행과 긴장을 주지 않고, 권선징악적이고 계몽적인 요소도 서양인들에게는 감동을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기업 무름에 대한 순기능을 잘 보여주는 보아즈의 노력과 자세가 돋보이는 일화들이라 하겠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보통의 인간들은 망원경으로 넓은 세상을 바라보기 보다는 현미경으로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곤 합니다. 그 결과 과소평가 내지는 과대망상에 젖기도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이런저런 경우를 두루 생각할 겨를이 없이 피해망상에 푹 빠져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매우 예외적으로는 그 캄캄한 터널 같은 현실을 뚫고 밝은 세상으로 나오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철이 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첫 입주 가정교사를 할 때 부잣집 맏아들로 태어나 장래가 환히 열렸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게을리 하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정교사를 일곱이나 갈아치운 화려한 경력으로 저 역시 손을 들고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했습니다. 배수진을 쳤습니다. 이번 달로 교사직을 사표 내겠다고 선언하고 마지막 수업을 하였는데, 그때 철이 들게 되었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력으로 중앙대학을 들어갔고, 자신의 실력으로 졸업고시를 패스하고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았습니다.

   철이 든다는 것, 제 정신을 차리는 것, 세상을 똑 바로 바라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교육일 것입니다. 미국 뉴욕의 할렘가에 한국식 교육으로 미국 명문대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많이 생겨서 오바마 전 대통령을 감동시킨 공립학교가 있습니다. 교문에서 복장 검사를 하고, 불량자에게 훈육을 하고, 손을 들고 질문 차례를 기다리고, 선생님께 공손히 말대꾸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매일 숙제를 내 주고 검사를 하는 등 말입니다. 철이 들기만 하면 제 정신을 차리기만 하면,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기만 하면, 적어도 자신의 현재와 그리고 미래는 바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철이 든 룻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제 정신으로 살아가는 보아즈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주여가 아니어야 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바로 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전히 제 주변에도 신앙을 가장하거나 이용하는 수많은 성공과 출세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보아즈는 만인이 보는 앞에서 기업 무름의 정당한 절차와 내용을 밟아 결혼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윗 왕의 조부가 될 오벳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경은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을 나았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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