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86(2021. 8. 6. 금요일).

시편 시 22:3-5.

찬송 51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수영 시인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많이 얘기되고 연구되는 시인입니다.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그런 시인이지요. 그가 쓴 마지막 시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는 시 <>,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민중의 저항과 강인함을 대표하는 시로, 누구나 쉽게 외울 정도였지요. 그러나 그를 나타내는 다른 좋은 시가 많은데, <>은 오히려 시적인 완성도 약한 시다. 그런 시를 하필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 것은 아쉽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아예 한국 문학사에서 행해지는 그에 대한 평가 자체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반감과 비난도 없지 않지요. 그럼에도 그만큼 큰 영향력을 끼친 시인도, 그렇게 어려운 시를 썼는데도 그렇게 많이 알려진 시인도 드뭅니다. 철학자 강신주는 그런 김수영 시인을 관통하는 건, 바로 자유에 대한 전면적인 열망이라고 평합니다. “자유정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니까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모방하는 삶이나 억압된 삶은 모두 자신의 삶을 자기 것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실패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김수영이려고 발버둥 친 시인이다. 그가 자신을 자신으로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체의 것에 저항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을 타인의 흉내를 내지 않고 제대로 살아내려 했음을 말한다. 제대로 된 시인이 되는 것은 본인으로써는 사활을 건 문제였다. 그러느라 그는 1968616일 비운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그런 김수영에게서 후대의 철학자 강신주는 늘 큰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현실에서 이런저런 일로 너무 힘들 때마다, 유일하게 기대어 위로받고 힘을 얻었던 게, 바로 김수영이었다고 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815일 방송>a.

 

2. “길보아 싸움에서 사울이 전사하다(1-13)”을 읽었습니다. 벳산과 므깃도의 중간쯤에 위치한 길보아산은 500여 미터의 야산이었는데, 이곳에서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은 불레셋 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비극적인 이야기가 오늘의 본문입니다. 사울 왕에 대한 성경의 일화들은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만,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불순종의 기록은 그가 비록 왕일지라도 제사장의 역할을 대신한 사건이 전부인 듯한데(삼상 13:8-15), 그 정도라고 한다면 사울처럼 버림받지 않을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 사건이외에도 훨씬 더 많은 버림받아야 할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할 뿐입니다. 사울의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그리고 말기수아가 불레셋 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죽었고, 사울 역시 화살에 맞아 큰 부상을 당하자, 불레셋 군에 붙잡혀 수모를 당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무기당번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가 망설이자 스스로 자결하게 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네 부자가 함께 전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왕의 시신을 발견한 불레셋 군은 사울의 갑옷은 그들의 아스다롯 신전에 보관하고, 사울의 시체는 벳산 성벽에 못 박아 달아놓는 수모를 겪은 것입니다. 다행히 이스라엘 군사들은 벳산 성벽에 달린 사울의 시신을 내려 화장한 후 그 뼈를 길르앗 야베스에 매장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 상에는 코로나19로 무료한 사람들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유명한 라틴어 3문장이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비교적 친숙한 라틴어 문장인데, 동사+목적어로 이뤄진 짤막한 경구(警句) 같은 이 세 문장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아모르파티(Amor fati)’라는 말입니다. 차례로 그 의미를 요약하면, 카르페 디엠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한 말로 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이며, 메멘토 모리는 고대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이 로마를 행진할 때, 옆에 한 노예를 태우고 끊임없이 이 말을 외치게 함으로 오만하고 우쭐대지 말라는 경고의 뜻으로 죽음을 기억하라.” 고 했으며, 마지막은 아모르파티는 니체가 그의 책 <즐거운 학문>에 쓴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또 다시 인생을 산다해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되풀이 될 뿐이니, 있는 그대로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사울의 생애를 보면서, 그리고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라틴어 세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사울 왕처럼 권력이나 명예가 주어질 때, 주어진 좋은 기회를 남용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석학이라 유명세를 날리던 한 유명 신학교수가 사울의 길을 따르다 끝 모를 추락했는데, 성공한 한국 교회지도자의 길들여진 자화상일지 모르겠습니다. 성공과 출세의 이면에는 이런 흑역사가 존재하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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