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17(2021. 9. 6. 월요일).

시편 시 28:6-9.

찬송 13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외과의사인 김원곤 교수의 한 마디입니다. “어릴 때부터 음정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어서, 웬만큼 익숙한 곡도 제대로 따라 부르기가 어려웠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난제중의 난제였다. 그래선지 의사 초년 시절에는 조금 애매한 청진의 경우, 정확히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한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의사들은 늘 청진기를 목에 두르고 있지요. 그 청진기로 가장 먼저 환자의 상태를 감지하거나 파악합니다. 그러니 의사들에게는 청진기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진단도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외과의사인 김원곤 교수는 그런 청진기로 환자를 진단할 때, 꼭 필요하고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게 뜻밖에 음악적인 감각이라고 말합니다. 청진기는 결국 한 사람의 몸이 들려주는 아주 섬세한 어떤 소리를 기준으로 병을 진단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소리와 음악에 밝은 귀와 감각을 가졌을수록,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진단이 가능합니다. 꼭 청진기만이 아닙니다. 의사들은 청진기 말고 타진법이라는 진단법도 쓰지요. 타진법은 환자들의 무릎이라든지 어깨 같은 곳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려서, 그 소리로 문제를 진단하는 진단법입니다. 그러니 타진 법에서도 역시 소리의 차이를 미세하게 들어내는 음악적인 감각이 의사의 능력을 가리기도 하지요. 그러니 음악적인 감각이 뛰어나거나 그 감각을 잘 훈련받은 덕에 의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의사들도 꽤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스트리아의 의사였던 아웬부르거 입니다. 그는 평소 오페라 가사를 쓸 정도로 음악에 대한 조예와 애정이 깊었지요. 덕분에 소리에 누구보다 민감해진 그는 마침내 의학계 최고의 진단법 중의 하나로 꼽히는 흉부 타진 법을 만들어 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831일 방송>a.

 

2. “가장 큰 재난(14-23)”사람의 아들이 오는 날(24-27)”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14세기 유럽은 흑사병(페스트)으로 당시 인구의 약 30%가량이 사망하는 대재앙을 맞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통계는 정확할 수 없겠습니다. 불과 4-5년 사이에 3사람 중 한 명이 죽었으니까 이러다 세상이 종말을 맞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 때도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검은 쥐에 기생하던 동양쥐벼룩을 기주로 한 페스트균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코로나191, 2년에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 종말에 대한 가짜 뉴스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오늘 본문은 종말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주님은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유대인들은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십니다. 공동번역 성경과는 달리 개역 개정판 성경은 황폐한 상징인 흉측한 우상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수식은 조금 다를지라도 우상의 그림이나 조각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자리 곧 예배 처소나 성도의 집과 일터 같은 곳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떠받들게 되는 시절이 오거든 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슬픈 날이 오거든 홀로 기도하기 위해서 산으로 가야하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지붕으로 가야하며, 세상 물질을 건져보려고 쌓아둔 재물을 챙기지도 말아야 하고,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가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것들을 언급하는 것은, 이제는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과 애착을 가질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분명 우리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재난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비극의 날이 겨울이 아니기를 기도하라고 부탁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여기저기서 출몰할 것도 말씀합니다. 남에게 속기 잘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향한 당부처럼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종말의 날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우주가 물이나 불처럼 혹은 역병처럼 엄청난 파도에 쓸려가 버리는 우주적 종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가는 개인적 종말의 위험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음을 향해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적어도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에게는 또 다른 기회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덤에서 눈을 뜨는 순간 주님 앞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심판이 장엄하고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오늘 우리의 삶이 부끄럽고 초라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칭찬은 듣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살았다. 충실한 삶이었다는 말씀은 들어야 할 테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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