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18(2021. 9. 7. 화요일).

시편 시 29:1-2.

찬송 53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의학공부 과정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게, 음악 수업이나 음악 감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능력 있는 의사가 되는데 음악적인 감각만이 다이거나 결정적인 요인인 건 물론 아니지요. 그러니 김원곤 교수 같은 경우엔 그 감각이 남보다 훨씬 못했다면 서도, 해당분야 최고의 의사가 됐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음악 감각 때문에 애를 먹는 건, 그에겐 의학공부 보다도 어학공부 때였다고 합니다. 그는 의사로도 유명하지만, 50대란 나이에 그것도 누구보다 바쁠 흉부 외과 의사로 지내면서, 문득 4개 국어를 배워낸 점으로도 유명하지요. 4개 국어는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들이었는데, 그 중의 어떤 말도 당장 하고 있는 일이나 앞으로의 삶에 특별한 필요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쉰 살의 나이에 갑자기 한 개의 외국어도 아니고 4개나 되는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마냥 똑 같이 흘러가는 일과후의 시간들이 아깝고 허망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지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처음부터 워낙 언어에 소질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말하지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음악 감각이 없어서 외국어를 배울 때, 듣기며 발음에 얼마나 큰 애를 먹었는지를 기꺼이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덧 4개 국어를 말하는 음악적인 언어의 주인공이 됐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를 보면서 인생을 갈수록 더 풍부하고 의미 있게 사는 데는, 그 어떤 감각보다도 시간의 빠르기며 그 가치를 더욱 세심하고 절실하게 느낄 줄 아는 시간감각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그것만 강하면 다른 어떤 중요한 감각이 좀 부족해도, 결국은 원하는 것에 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외과의사인 김 원곤 교수의 한 마디, “어릴 때부터 음정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어서, 웬만큼 익숙한 곡도 제대로 따라 부르기가 어려웠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난제중의 난제였다. 그래선지 의사 초년병 시절에는 조금 애매한 청진의 경우 정확히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한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831일 방송>b.

 

2. “무화과 나무의 교훈(28-31)”그 날과 그 시간(32-37)”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가끔 자녀의 문제로 의논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목회자로써 자질이 있느냐 로부터, 건강하게 오래 살 것 같느냐는 의견도 듣고 싶어 합니다. 목회자의 자질과 같은 질문은 그동안 신대원 면접고사에서 숱하게 묻기도 하고 듣기도 했던 풍부한(?) 경험으로 몇 마디는 해 줄 수 있지만, 의사도 아닌 제가 건강 문제를 얘기하기는 버거운 질문입니다. 그러나 의사도 없고, 의료상식도 배우지 못한 오지중의 오지인 흑룡강성 북단이나 내몽고 혹은 몽골과 베트남 오지에서 오신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궁금한 질문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면 제가 할 수 있는 말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종말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먼 길을 떠나며 종들에게 집을 관리하도록 맡긴 경우와 비슷하다면서, 집 주인이 언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종말에 대한 준비란 깨어있는 삶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정신을 차리고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깨어 있다는 말은 순전히 정신적인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깨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깨어있지 못하는 걸까요? 그 좋은 실례가 있습니다. 타이완이 배출한 걸출한 인물로 임어당이란 분이 1960년대 한국을 방문 강연을 했는데, <주간조선>에 실린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중국의 한 유명한 재상의 얘기를 꺼냈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정직과 근면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재상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두 아들은 망나니처럼 주색에 빠져 살고 있는 두 아들을 불러 앉혀놓고, 자신이 살아온 삶과 아들들의 삶을 비교하며 나무랐다고 합니다. 그때 큰 아들이 하는 말, “아버지는 위로 올라갈 희망이 있어서 성실 근면하게 살 수 있었지만, 저는 더는 올라갈 희망이 없으니 지금처럼 살 수 밖입니다.” 라고 변명하더랍니다. 임어당은 가난한 농촌의 청년들아, 자네들에게는 희망이 있지 않으냐?”고 열변을 토했던 것입니다. 지금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야단법석들인데, 지금 우리의 희망은 미국입니까? 우리의 마지막 희망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정의와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연약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랑스럽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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