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26(2021. 12. 24. 금요일).

시편 시 48:1-3.

찬송 2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아는 한 만화가는 예명으로 원래 이름에서 마지막 한 글자를 뗀 두 글자 이름을 써요. 마지막 글자가 무겁게 느껴져서 라는 데요. 이름도 인생도 무거운 글자 떼내듯, 좀 가볍고 산뜻하게 살고 싶었던 거지요. 한 글자 덜어낸 예명처럼, 정말 그렇게 가볍고 산뜻하게 살게 됐는지는 본인도 아직 잘 모르겠다는데요. 동양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이 한 사람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믿지요. 그래서 성명학이나 작명소 같은 곳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서양에서도 이름이 한 사람의 이런 저런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요. 예일 대학교 심리학과 조지프시모스 교수팀의 연구결과도 그 중의 하나인데요. 조지프 교수에 따라면 사람은 무엇에서든 무의식적으로 자기 이름과 비슷한 글자들을 선택한다고 해요. 일명 <이름효과> 라고 불리는 주장이지요. 가령 톰이라는 사람은 자기 이름과 비슷한 토요타 차를 사고, 토론토 같은 도시에 매력을 느끼지요. 또 데니스나 데나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덴티스트 치과 의사가 될 확률이 좀 더 높고요. 만약 정말 그렇다면, 사람은 뭔가를 자기 의지대로 선택하기 보다는 이름이 내리는 결정들에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셈이잖아요.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하는 노력 같은 게 다 무의미해지는 데, 그건 너무하지 않을까요? 또 때로는 심지어 이상한 이름도 그 사람이 성공하거나 정말 행복하게 살면, 그 이상한 이름조차 멋지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어떠한 이름이 됐든 자신의 이름을 믿고 또 열심히 스스로 밀어주면서 지내는 게 최고가 아닐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91116일 방송>

 

2. “사가랴의 노래(67-80)”을 읽었습니다. 사가랴는 예루살렘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식을 낳기에는 너무 늙었고 그의 아내 역시 자식 낳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하고 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사가랴에게 엄청난 이야기를 꺼냅니다. 자신의 아내가 아들을 낳을 텐데 이는 너의 가문의 기쁨 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라며, 그의 이름은 요한이 될 텐데, 아이는 마치 나실인처럼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데려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가랴는 자신은 물론 아내도 늙은이가 되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믿으라 하느냐고 의심합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실 때까지 벙어리로 지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었고, 성전 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말을 못하고 손짓 발짓으로 시늉만 할 뿐이었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을 연상하게 하는 일화처럼 읽혀집니다. 요한은 그렇게 얻게 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저 유명한 사가랴의 노래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사가랴의 노래는 베네딕투스라는 이름으로 아침 기도회(Matins)에서 테데움을 대신해서 불리고 있습니다.

   사가랴의 노래(Benedictus)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찬양하는 것을 시작으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역사 속에서 일하시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고, 자신의 아들이 주님의 앞길을 닦는 길을 준비하게 하시고, 구원의 태양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내용입니다. 훗날 기독교 예배학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이런 노래들에 가락을 올려서 이른바 영창(Canticle)이라는 형식의 찬송을 부르도록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영창들로는 대영광송(Gloria in Excelsis), 상투스(Sanctus), 하나님의 어린 양(Agnus Dei), 시므온의 노래(Nunc Dimittis), 시편송(Venite),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사가랴의 노래(Benedictus) 등이 있습니다. 이런 영창들은 우리가 많이 부르는 복음가와는 여러 가지 점에서 차별화를 가집니다. 인간중심적이고 감상적인 복음가와는 달리 하나님의 위엄과 섭리를 찬송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때문입니다. 우리 예배에서 이런 영창이 간절해 지는 요즈음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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