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43(2022. 1. 10. 월요일).

시편 시 50:21-23

찬송 41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심리학의 시대에 보내드리는 나와 당신 우리 자신의 심리를 알면서, 더욱 행복해 지자는 <행복한 심리학>입니다. 어디엔가 주차하고 나서 차 앞 뒤 유리창으로 광고 전단지 가득 꽂혀 있을 때 있지요. 그런데 아는 사람 사무실 앞에다 주차하고 그 사람 만나고 돌아왔더니 차 유리창에 뭔가가 꽂혀 있다. 그런데 그게 광고 전단지가 아니라 멀쩡한 우편엽서라면 어떨까요? 더욱이 엽서를 받는 사람 이름을 보니까 자신이 방금 만나고 온 사람의 이름이라면 요. 한 심리학자가 실험을 했어요. 소위 <엽서 분실 기법>. 우표도 붙이고 주소도 확실하게 적은 엽서를 180장을 주차된 차들의 유리창에 끼웠습니다. 마치 근처에 떨러져 있던 엽서를 혹시 당신께 아니냐며 주워서 끼워두는 듯 하게요. 단 엽서 중에 삼분지 일은 꽤 좋은 소식을 적은 좋은 내용의 엽서였고요. “당신의 연인이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을 봤다.” 뭐 이런 내용의 이런 내용을 친구에게 알리는 나쁜 엽서였지요. 동시에 차 옆에는 바로 우체통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그런 차들에만 엽서를 꼽았지요.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쉽게 우체통에 넣을 수 있도록 요. 그렇게 해서 심리학자 앞으로 엽서들이 돌아오도록 해서 분석해 보니까, 좋은 소식을 담은 엽서는 약 60% 정도가 돌아왔고요. 연인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나쁜 소식의 엽서는 약 20%정도만 돌아왔답니다. 사람들이 나쁜 소식을 전하는 나쁜 전달자가 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거라 하지요. 사실 들어서 기분 나쁠 소식을 굳이 얘기해 주면서 걱정해 주듯이 전하는 사람들도 실제론 없지 않은데, 그런 사람들은 나쁜 소식의 엽서를 돌려보내는 20% 안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하여튼 올해 나쁜 소식을 전하는 전달자도, 나쁜 소식을 전해 듣는 수신자도 아닌, 좋은 소식만의 송 수신자가 되기를 다시 한 번 또 빌어봐야 하겠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118일 방송>

 

2.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1-18)”을 읽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4복음서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서)는 예수의 삶에 대한 사실들을, 요한복음서는 예수의 삶의 의미를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사셨는가를 말씀하는 것에 비해서, 요한복음서는 그런 예수의 삶의 의미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 복음서를 여는 귀중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존재양식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크리스천의 존재방식을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했는데, 이에 반해서 요한복음서 기자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말씀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역사에 참여하시는 내용에서 밝히 드러난 것을 근거로 삼은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대면하고 싶어 한 사람들이나, 하나님이 인간 역사 속에 능력과 권능으로 개입하시기를 기원하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나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하나는 말씀으로 다른 하나는 침묵으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현존하신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라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쓸데없는 어리석은 희망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겠다거나(幻視),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겠다거나(幻聽),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것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존재양태는 말씀이라고 확언하시는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를 부지런히 듣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실체인 성찬에 열심히 참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며 기다리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라고 했던 대답을 음미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계시는 그 자리에 주님께서 현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 크리스천은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따르며 사는 한,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읽혀지고 선포되고 실행하는 동안은,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을 실감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저의 고모님은 3km나 되는 교회를 매일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셨는데, 무섭지 않느냐 묻는 제게, “주님의 말씀을 속으로 외우며 걷고 있는데 뭐가 무섭냐?”고 되물으셨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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