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40(2022. 1. 7. 금요일).

시편 시 50:9-12.

찬송 41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심리학의 시대에 보내드리는 나와 당신 우리 자신의 심리를 알면서, 더욱 행복해 지자는 <행복한 심리학>입니다. 남자들 귀걸이 한 것 보면 어떤 생각 드세요? “멋지다.” 에서부터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거기에다 만약 귀걸이를 한 남성이 20대 젊은 남자가 아닌, 40대 후반의 중년이라면 또 어떨까요? 심리 경영 컨설팅 회사를 경영하는 한 남성 심리 경영가는요, 40대 후반에 귀를 뚫고 귀걸이를 꽂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러자 비즈니스 미팅에 참석한 비슷한 연배의 남자들이 별로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요. 하지만 사무실 주변에 사진 스튜디오가 있어서 그런지, 주변 식당에서나 미용실 아주머니들께서 사진작가냐? 묻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술가 대접을 해 주기도 하고요, 그런가하면 젊은 여성들은 귀를 뚫는 게 신경통에 좋다는 속설을 정말로 믿는 듯이, 혹시 신경통 있으세요? 궁금해 한다고들 하지요. 그러면서 여성들은 뜻 밖에도 중년 남성의 귀걸이에 꽤 호의적인 반응이었데요. 처음에는 그 호의가 귀걸이를 한 자신의 모습이 멋져보여선가 잠시 오해도 했다고요. 하지만 그분은 곧 알게 됐다고 합니다. 여성들이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 건, 귀걸이를 하는 중년 남자라면 적어도 맞추 근성은 없겠다, 얘기가 좀 통할 수도 있겠다, 이런 심리적인 무장해제랄까요? 몸에 밴 남성적인 권위, 중년 남성아저씨 같은 이미지를 버리니 사람자체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던 거지요. 덕분에 여직원들만 있는 심리관련 회사에서 소통이 훨씬 원활에 지는 덕도 보고 있다는 데요. 역시 가끔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파격도 필요한 거겠지요. 그런 뜻에서 올해는 그동안 사람들이 내리는 가장 답답하게 여기는 것 한 가지 쯤에서 파격적으로 벗어나 보시는 것 어떠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114일 방송>

 

2. “생명의 빵(41-51)”을 읽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하신 전형적인 계시 복음입니다. 우리는 흔하게 들어온 말씀인 때문에 아무런 갈등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은 못 마땅했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 그 부모도 잘 알고 있는 이웃이었는데,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느냐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아무 질문 없이 잘 받아들이고 믿는 우리들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의문을 품었던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저는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던 그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 크리스천의 빈말 혹은 감동 없는 헛소리에 대해서 비판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는 말들이 앵무새처럼 따라하다가 길들어버린 말이 되어 버렸다고 말입니다. 진정성이 없는 말을 아무런 느낌 없이 사용하는 것은 공허할 뿐입니다. 그때 주님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엇이 그리 못마땅하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지 않으신다면, 주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이르는 신비입니다. 4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했던 모양입니다. 인간의 이성의 힘으로는 누구도 믿음에 이를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도움으로만 믿음에 이르게 된다고 말입니다.

   예언서는 믿음에 이르는 비밀을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가르쳐서 깨닫게 하고 감동을 받게 하신 사람들이 믿음의 비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보았다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헛소리를 경계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믿음의 신비에 이르게 된 것이 마치 자신의 지혜나 능력인 줄로 착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말장난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들려 주셨습니다.” 하면서 말입니다. 모두 거짓부리입니다. 믿음의 신비는 보고 듣고 만지는 등으로 증명할 수 있는 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영역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에도, 이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려는 유혹에 빠지는 때문입니다. 이 역시 교부 어거스틴이 잘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영역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역은 믿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그 말씀을 믿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그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다 보니까, 눈으로 봐야 하고, 손으로 만져봐야 한다고 욕심을 낸 것입니다. 이성과 믿음은 전혀 다른 차원임을 깨닫기까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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