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97(2022. 3. 5. 토요일).

시편 시 64:1-4.

찬송 41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병규 아버지에게>    살다보면 어디선가 누구에게 선가 들었던 소리를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지 않아. 요즘 병규 문제로 속을 끓이면서 또 주변에 의논을 구하면서 딱 내가 그러고 있더군. 병규 그 녀석 머리는 나쁘지 않은데 제 머리만 믿고 공부를 너무 안 해서 탈 이예요. 그래 우리 아이 원래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못 봤던 것 같애.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는 부모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당신의 편지를 읽고 그것은 더 더욱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 단순한 아이큐나 성적 얘기가 아니라, 부모의 자식에 대한 믿음의 증거라고 생각해. 어려서부터 그 아이를 봐 왔기 때문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빙산의 밑 부분까지를 느낄 수 있는 부모들이 할 수 있는 말이지. 머리는 나쁘지 않은데 공부는 안 한다는 말, 이제는 절대로 비웃지 않을 생각이야. 당신 편지 읽기 전에는 정말 별 생각을 다 했어. 어떻게 해야 그 아이가 다시 마음을 잡을까? 어떻게 다시 책상에 앉힐까 주로 이 생각만 했지. 그런데 당신의 말대로 놀고 싶다는 아이 억지로 책상 앞에 붙잡아 놓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지더군. 살면서 호주머니에 뿔고동 한번 집어 넣어보지 않은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누군가가 말했다고 하지. 맞아, 잠깐 방황해 보지 않은 청춘, 샛길로 슬쩍 벗어나 보지 않은 청춘을, 청춘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거야. 그래 아직은 기다릴 차례라는 말에 동의해.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잘 지켜보면서 기다렸으면 좋겠어.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샛길로 걷다 막다른 벼랑길로 내 몰리지 않도록, 우리 눈을 크게 뜨고 기다리자.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9323일 방송> b.

 

2.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다 3(20-26)”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릴 때는 우체국장 집에 태어나기를 기도했는데, 시험에 나오는 문제가 있는 참고서를 보는 그 집 아들이 부러워서 그랬고, 때로는 과자를 파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싶다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기도들은 진심도 간절함도 없는 가벼운 것들이었습니다. 그 후 기도를 가르치는 목사가 되어서 정말로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교우들로 살고 싶다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런 교우들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진심으로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주제는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셨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이며 어떻게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하나가 되는 일이 어찌하여 중요한 일입니까? 하나가 된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결혼식의 주례자로써 저 역시 이제는 하나가 되십시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했습니다. 뜻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주님은 무슨 뜻으로 하나 되라 하시고 계십니까?

   첫째는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주님은 이를 서로가 서로 안에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21-22).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일체를 포함해서 정신적인 일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어느 예능 프로에서 남편은 영원한 남의 편이다.”는 얘기를 듣고 공감했습니다. 부부로 살아가는 일은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는 하나임에 분명하지만 정신적으로 하나 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주님은 불가능한 일에 도전을 하고 계십니다. 둘째는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23-26). 주님께서 우리들 안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주님 안에 계시는 일은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하나님과 아들이신 주님께서 서로의 세계에서 교제하시는 일이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겠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얘기입니다. 아무 가치도 없는 살고 있는 인간들을 찾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주님을 말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들 죄인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들 이성으로는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믿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이렇듯 주님의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려는 도전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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