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02(2022. 3. 10. 목요일).

시편 시 65:8-10.

찬송 37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천성적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솔직한 사람도 있겠지만요, 여러 가지 미덕 가운데서 솔직하다는 미덕은 어쩐지 세월이 가르쳐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감추기란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주 경험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더 솔직해 질 수 밖에 없지요. 추리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지적한 <거울의 트릭>, 거울 속에 남의 모습이 보일 때는, 반드시 상대방에게도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잊기 쉬운 거울의 진실이, 추리에 아주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지요. 현실 속에서야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살인 사건을 접할 일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어찌된 일인지 추리를 해야 될 것만 같은 일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관계들이 조금씩 어긋나거나 누군가의 이해하기 힘든 반응, 어쩐지 자꾸 마음에 걸리는 몇 마디 말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좀 풀어보려고 하면, 어느 새 추리를 해 나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거울 트릭을 응용해 볼 수 있겠지요. 내 거울 속에 그 사람 또는 그런 관계, 말투가 비쳤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에게도 내가 그렇게 고스란히 되비쳤다는 뜻이겠지,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뜻밖의 오해가 아닌 경우, 대개 그쯤해서 문제의 고리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감정에 솔직하면, 그만큼 더 쉽게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 내거나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일 텐데요. 그런 경험을 몇 번쯤 하고 나면, 뭔가를 감추기 위해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별 소용이 없구나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월이란 우리에게 좀 더 마음을 여는 법, 좀 더 솔직해 지는 법을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8228일 방송>

 

2. “하나님의 일꾼(1-15)”을 읽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파벌 문제로 심각한 내상(內傷)을 입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도 바울은 잠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저 유명한 하나님의 일꾼론을 언급한 것입니다. 어느 시대 교회나 사회적 배경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가령 수천 년 동안 반상(班常)의 계급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던 우리 교회도, 이런 사회적 악습을 따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읽은 사도 바울의 편지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유럽의 기독교회도 그런 악습을 따를 뻔 하였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같은 바울의 편지를 읽으면서도, 유럽교회와 한국 교회는 매우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도는 자신을 비롯해서 아볼로나 게바 모두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규정합니다. 다만 서로 다른 임무를 맡았을 뿐, 동등한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믿음으로 인도한 일꾼에 불과하고, 각각 맡겨 주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그러면서 아주 구체적으로 나는 씨를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만이 중요하시다고 전제한 후, 심는 사람과 물주는 사람은 동등한 사람이고, 수고한 만큼 삯을 받을 따름이라고 말씀합니다(6-9). 강습회를 지방에서 갖게 되어 지방 어느 숙소에 묵게 되었는데, 국내 개신교파 중에서 가장 크다는 교회에서 총회장 선거를 앞두고 그 후보 중 한 분이 같은 숙소에 묵고 있었습니다. 십여 명의 운동원(?)들이 모여서 전략을 짜고 있었는데, 전국을 투어하려면 경제적인 부담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기를 쓰고 총회장이 되고 싶어 하며, 1년 명예직에 불과한데 상대를 험담까지 할까 하고 말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반상(班常)의 한 예였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장로와 권사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교단의 헌법에 따라 교회 제직으로 일한 연한에 이르면 누구나 자격을 갖게 되고, 한 달간 게시판에 후보자를 공고하고 투표로 선출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들이 밖으로부터 불거졌습니다. 뽑힌 이들이 학식과 경력 등 사회적 지위라는 측면에서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와 비난이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일단 장로나 권사에 임직한 후에, 자신이 받은 그 직분을 권리처럼 주장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정당하게 절차를 밟아 세운 교회 계획이나 운영에 대해서 반대하는 경우였는데, 대체로 은퇴를 앞둔 이들로 예전처럼 활동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 표현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은퇴하면 두 번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실천 중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일꾼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부름 받은 역할에 대한 것이지, 신앙의 깊이나 인격의 높이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다시금 우리의 소명은 서열이 아니라 동등한 일꾼으로, 포도원에 일하러 왔던 일꾼들처럼 동일하게 한 달란트를 받을 뿐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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