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03(2022. 3. 11. 금요일).

시편 시 65:11-13.

찬송 49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대공황시절 하루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각하께선 걱정스럽다든가 초조할 때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히십니까?”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휘파람을 붑니다.” 기자는 의외라는 듯 다시 질문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대통령께서 휘파람 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는데요?” 그러자 루스벨트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죠. 난 아직 휘파람을 불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루스벨트의 이 한마디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무한한 긍정과 희망의 정신을 지닌 인물이었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어찌 걱정스럽고 초조한 일들이 없었겠습니까마는, 루스벨트에게 그러한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경기 침체의 여파 속에 불안에 떠는 국민에게, 아직 미국은 끄떡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가 대공황의 절정에서 국민을 향해 던졌던 희망 메시지는, 오늘 생활고에 짓눌려 있는 우리를 위한 격려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사용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합시다.”

차동엽, <잊혀진 질문>, p.44.

 

2. “하나님의 일꾼 2(3:16-23)”을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의식(自意識)이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인식 또는 자기 지각이라는 말로도 사용하는데, 의식적(意識的)으로 자신의 성격, 느낌, 동기, 욕구 등을 잘 알고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의식은 교육받지 않고서는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자신의 성격이나 느낌 그리고 동기나 욕구 등에 대해서 적절한 관찰과 훈련을 받을 때,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크리스천들에게 크리스천으로써의 자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주목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모든 크리스천들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께서 크리스천의 심령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16). 사도는 보통의 인간 곧 크리스천이 되기 전의 인간이란 육적이고 세속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된 이후에는 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평범하고 보통인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그리스도)로 믿게 되는 순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이 되었고,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성전이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자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최초의 성전인 외막에서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표시로 등잔에 불을 밝혔습니다. 빛은 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배의 시작에 제단에 불을 켜고 예배가 끝이 날 때 제단의 불을 끕니다. 그래서 모든 예배 자들은 제단의 불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고 확신합니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크리스천의 자의식 곧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활동에 대해서 묵상할 차례입니다.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써 가장 후회되는 일은, 제가 가르친 교우들에게 자신이 옛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 곧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임재하고 계시며 성령 하나님께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분명한 가르침과 훈련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매우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잘못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이해를 확실하게 가르치지 못한 때문입니다. 실존적 이해란, 일종의 자기 자신의 존재나 느낌 그리고 희망에 대한 진솔한 자기 발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존주의는 데카르트가 자신을 생각하는 존재로 발견한 것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추상적이고 엉뚱한 자기 이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이해하게 될 때 얻는 의식으로, 가령 신앙인으로써 자신의 악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허물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처럼 비록 교육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이해, 하나님께서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깨달음을 말합니다. 이런 이해는 신앙생활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림절(혹은 강림절) 기간에 역사적 초림 주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심판주로 오실 재림 주를 대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주님의 강림 곧 우리들 심령에 오신 실존적 강림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절망이나 희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느끼고 이해하는 실존적 수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현실의 삶과 문제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한 삶이라면 허공을 맴도는 삶에 불과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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