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84(2022. 9. 8. 목요일).

시편 시 96:7-10.

찬송 48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을의 전령사라고 불리지요. 코스모스가 웬일인지 올 해는 이른 여름부터 피어 있는 것을 봤습니다.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해 보이기도 했는데요. 코스모스는 그래도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모습이 제 모습이지요. 이기순 시 이흥렬 곡 <코스모스를 노래함> 준비 했습니다. 춤추듯 가볍고 리드미컬한 선율이 마치 달빛아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꽃잎을 상징하는 듯 무척이나 곱게 다가옵니다.

    “달 밝은 하늘 밑 어여쁜 네 얼굴 달나라 처녀가 너의 입 맞추고, 이슬에 목욕해 깨끗한 너의 몸, 부드러운 바람이 너를 껴안도다. 코스모스 너는 가을의 새아씨, 외로운 이 밤에, 나의 친구로다. 마음은 고요타, 내 마음 더욱 더 적막하여지니. 네 모양 더욱 더 처량하구나, 고요한 이 밤을 너 같이 새려니. 코스모스 너는 가을의 새아씨 외로운 이 밤에, 나의 친구로다.”

    이곡은 작곡가가 고향인 원산에 있을 때, <바위고개>와 더불어 초기에 작곡한 곡입니다. 이흥렬의 가곡 중에서 널리 애창되는 그런 곡이지요. 가을의 적막함을 읊고 있다고는 해도 여느 적막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속에 위트와 흥겨움이 담겨 있는데요. 청초한 코스모스의 가련한 모습을 노래한, 맑고 고운 시상이 간단한 형식으로 다듬어진 고운 노래입니다. 작곡가는 코스모스하면 의례 가녀리고 조용한 느낌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경쾌하고 산뜻한 느낌을 전해주고 싶어서 밝은 선율을 사용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느린 감이 있으면서도 호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98일 방송>

 

2. “삼손(1-20)”을 읽었습니다. 나실인으로 서원을 하며 기른 삼손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는 충분히 기대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고 한다면, 다시 말하면 자신들을 혹독하게 지배하는 바벨론의 딤나 여인을 탐하고 그 여자를 아내로 맞게 해달라고 부모를 조르는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역사를 뒤죽박죽을 만들 때, 많은 신앙인들은 낙심하거나 분노하게 마련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수르나 바벨론에 무참하게 정복당하였을 때, 셰익스피어 등 수많은 문장가들에게 조롱거리로 전락하였을 때, 히틀러와 같은 무뢰한들에게 이유 없이 살해를 당했을 때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에서도 이런 탄원의 시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원한을 갚아주시라고 통곡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두고서 사사기를 쓴 기자는 매우 의미심장한 한 구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이일이 모두 야훼께서 하시는 일인 줄 몰랐다.”(4) 고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권위와 역사를 무력하게 만드는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순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경을 통해서 돌보신다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마침내 삼손은 딤나의 이름 없는 여인에게 장가를 들었고, 너무 흥에 겨운 나머지 객기를 부린 일화가 나옵니다. 이른바 수수께끼 사건인데, 자신을 두려워해서 들러리라는 이름으로 30명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얼마 전에 경험했던 사자를 죽이고 그 사자의 몸에서 꿀을 따서 자신과 부모가 먹었던 일을 배경으로 수수께끼를 제안합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힘센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수수께끼는 내기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누구든 지는 사람은 모시옷 서른 벌과 예복 서른 벌을 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삼손의 아내는 자신의 들러리고 왔던 자기 동족 청년들의 협박을 받게 되고 여인의 눈물에 약한 삼손은 수수께끼의 비밀을 알려주게 됩니다. 비밀이 탄로 난 것에 화가 난 삼손은 블레셋의 5대 도시 중 하나인 아스글론으로 가서 그곳 사람 30명을 죽이고 그들의 옷을 벗겨 비밀을 맞힌 자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삼손의 아내는 들러리로 왔던 30명 중 한 사람에게 시집가고 말았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나실인이 선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기는커녕 오히려 역린(逆鱗)을 건드려버렸으니, 이를 무슨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럴 때 신앙인은 고뇌와 묵상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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