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46호(2023. 2. 17. 금요일).
시편 시 119:94-96.
찬송 27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이는 칭기즈 칸입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아시아를 넘어 동유럽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땅들을 칭기즈 칸이 석권해 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유목민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곳을 유목민 특유의 특성을 지녔던 탓이라고 말이지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기 때문에, 늘 새로운 길을 찾고 또 다시 정착해야 했던 것, 바로 그러한 그네들의 운명이 부지런하고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민족성을 만들어 냈던 거지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더 나아갈 수 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겠지요. 작은 가능성 그 얕은 희망을 늘 가슴속에 품고 사는 그네들의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정착(定着)을 한다는 것은 안정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공간을 떠도는 대신에, 스스로 보호하고 보호받는 공간 안에 머무는 것, 정착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더불어서 안주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 곳에 평화롭게 머무는 동시에,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그 가능성 역시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글쎄요. 불안정한 진취와 도태될 수 있는 안주, 어떠한 선택이 옳다고는 어느 누구도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진취적인 행동은 결국은 새로운 안정을 찾아 떠나는 또 하나의 과정이지요. 안정하는 것 역시 진취적인 행동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르다고 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서, 결국은 같은 의미로 이어지고 이해받을 수 있는 것, 어쩌면 이러한 과정들이 바로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2월 17일 방송>
2. “신도들을 대하는 태도(1-2절)”과 “과부를 대하는 태도(3-16절)”을 읽었습니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백성들의 걱정을 함께 짊어지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어느 분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도, 비가 많이 오거나 반대로 날씨가 며칠 째 가물기만 해도 국민들의 마음처럼 헤아리게 되더라는 얘기였습니다. 교회 지도자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유명 목사가 조기 은퇴를 하고 젊고 신망이 있는 후배 목사를 청빙하여 교회를 맡겼는데, 후임자는 자신의 엉뚱하게도 일신상의 영달을 위해서 정치권에 적극 개입하는 등, 세상일에 분주하더랍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몇 차례 개인적으로 편지를 써서 권고했다 합니다. 그러나 전혀 목회 철학에 변화가 없자, 아주 비판적인 편지를 썼는데, 사후 3년 후에 그분의 아드님이 그 교회 당회원들에게 두 분 사이에 나눈 편지를 공개하여 알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평범한 사람들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질책 일변도였습니다. 그리고 한경직 목사님의 유명한 간증도 소개할 만합니다. 부산가는 새마을호에서 옆 자리에 앉은 중년 여자 분이 자신을 알아보고 반색을 하며 삶은 계란이며 귤 등을 사서 주더랍니다. 동대구역에서 내리면서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입을 뗐답니다. “혹시 기독교인이신가요?” 그때 낯빛이 파랗게 변하면서 “제가 30년이 넘도록 영락교회 집사입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때 내 양을 모르는 목자가 목사라 할 수 있을까? 라며 자책하더라는 얘기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와, 지도자에게 부과된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적시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둘째 단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교회 지도자는 의지할 데 없는 과부를 돌보는 일에 힘쓰는 일로, 구체적으로는 그 과부의 자녀들에게 자기 가족에게 신앙적 의무를 다하도록, 그리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또한 외로운 과부들이 오직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고 밤낮으로 간구하는 일밖에는 할 것이 없는데, 반대로 향락에 빠진 과부들은 잘 타일러서 비난받는 일이 없도록 지도하라 합니다. 둘째는 크리스천이면서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라고 일축합니다. 셋째는 교회의 과부회의 이름을 올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안내하는 내용인데 매우 흥미롭습니다. 과부회에 이름을 올릴 사람은 자기 자녀를 잘 기르고, 나그네를 후대하고 성도의 어려운 일들을 돌보는 선행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젊은 과부들은 그리스도께 헌신하겠다는 첫 약속을 저버리고 재혼을 하는 등 분위기를 헤칠 수 있다며 그 이름을 명단에 올리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사도행전 교회를 보면 당시 교회가 힘썼던 일 가운데 하나는 구제와 봉사였는데, 과부회가 이런 일에 앞장섰던 것입니다(행 6:1-6). 초대교회의 직제가 오늘날과는 현저하게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큰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3. 저의 고교 동기동창 한 분은 한국 예술원 회원으로(2021년), 대학 동기동창 한 분은 “연세를 빛낸 동문상”을 수상한다 합니다. 너무 가깝고 잘 아는 분들이라 내 일처럼 기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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