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47호(2023. 2. 18. 토요일).
시편 시 119:97-98.
찬송 30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술가로써의 생은 지난한 길일 수밖에 없지요. 창작의 고통과 평생을 싸우며 작품을 만들고, 그에 따른 동료와 대중의 평판에 원치 않게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작곡가 김동진이 처음 영화 음악작업을 시작했을 때도, 그는 동료들에게 타락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예술가로써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때로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영화를 위해 곡을 쓰는 것 역시, 김동진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운 작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동료들의 비난을 딛고 완성한 것이 바로 영화 <길은 멀어도>의 음악이었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영화라 평가받을 만큼 영화 속에 삽입된 김동진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많은 감흥을 일으켰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바로 영화 <길은 멀어도>의 주제곡이었습니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 곳. 그리움도 흘러가라. 파란 싹이 트고, 꽃들은 곱게 피어, 날 오라 부르네. 행복이 깃든 그곳에 그리움도 흘러가라.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이 가슴 깊이 불타는, 영원한 나의 사랑 전할 곳 길은 멀어도, 즐거움이 넘치는 나라,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내 마음도 따라가라. 그대를 만날 때까지 내 사랑도 흘러가라.”
당대 최고의 두 배우 최무룡과 김지미가 열연했던 영화 길은 멀어도, 청년작곡가와 여가수의 사랑을 담은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수 역을 맡았던 김지미가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을 부르는 장면은 큰 감흥을 일으켰고, 당시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본 후에 곡이 좋아서 악보를 구해달라는 청이 끊이질 않아서, 김동진 선생이 직접 복사한 악보를 사람들에게 보내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쓰인 곡은 김지미가 아니라, 당시 서라벌 대학에 재학 중이던 박옥련이라는 학생이 부른 곡이었습니다. 현재 바리톤으로 유명한 김동규의 모친이라고 하네요. 레코드로 취입할 때는 김동진 선생이 솔로곡과 박옥련과의 듀엣 곡으로 동시에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2월 18일 방송>
2. “만족할 줄 아는 신앙생활(3-10절)”과 “믿음의 싸움(11-21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논어 술이편에 있는 글귀 중 하나는 “반소사음수(飯疏食飮水)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 낙역재기중의(樂亦在其中矣) 불의이부차귀(不義而富且貴) 어아여부운(於我如浮雲)”로, 그 뜻은 “거친 밥 먹고 물마시며 팔베개를 하고 자더라도 즐거움이 그 안에 있으니 의롭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은 것이라네.” 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현대인들에게는 소귀에 글 읽기와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깊이 새겨볼 말임에는 분명합니다. 만족(滿足)할 줄 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이루었다 해서 누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고 운을 뗀 후, 부자가 되려고도 말라 하십니다. 그런 욕심에 빠질 때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때문이라 합니다. 그리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 하는데, 돈은 모든 악의 뿌리이며, 돈을 따르다 신앙을 떠나게 되고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는 때문이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만족이란 소유든 지위든 현재 상태에 감사하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든 현재의 상태보다는 더 높고 더 많은 것을 바란다고 하면, 평생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질문할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들 삶이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제가 사는 아산에는 <아산 맹 씨 행단>이라는 고택이 있는데(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중리 300), 본래는 고려 말 최영 장군의 고택이었는데, 이웃에 살던 맹사성을 손녀사위로 삼은 최영 장군이 집까지 물려주어서 맹사성 대감(세종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 역임)이 낙향 후 이곳에 맹씨 일가를 뿌리내린 곳입니다. 많은 일화가 있는데, 하루는 아산 현감이 젊은 시절에 자신을 격려해 준 맹대감의 처소를 방문했는데, 비가 샐 만큼 낡은 집에서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쌀 10섬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한 주민이 찾아와 어려운 삶을 호소하자, 조금 전에 현감이 가져온 쌀 10섬을 그대로 주었다 합니다. 그러자 대감은 내일 식량도 걱정해야 하는데 어쩌시려고 그러느냐는 현감의 말에, 내 형편을 아는 사람이 그냥 보고만 있겠느냐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그것입니다. 청백리 맹 대감은 나랏일을 볼 때는 물론 개인적인 삶에서도 욕심 없는 마음으로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일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공중 나는 새도, 들에 핀 백합화도 친히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라 줄기차게 성경구절을(마 6:25-34) 외우고만 있는 우리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생각되는 시간입니다.
3. 오늘은 대학 동기동창을 만나는 날인데, 자주 만나기로 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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