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43호(2023. 2. 14. 화요일).
시편 시 119:87-88.
찬송 5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동남아시아의 한 건물에서 못에 박힌 작은 도마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주인이 집을 비운지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동이 불가능했던 도마뱀의 생존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하네요. 더 놀라운 것은 못에 박힌 도마뱀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움직일 수 없었던 암컷 도마뱀을 위해서 수컷이 먹이를 매일 물어다 주었기 때문이었지요. 언어로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우리 인간의 사랑은, 과연 어떠한 모습인가? 하는 반성을 해 봅니다.
“나는 눈 하나, 날개 하나인 외로운 새, 나 혼자서는 저 하늘을 날아갈 수 없어요. 나도 눈 하나, 날개 하나인 외로운 새, 나 혼자선 멀리 볼 수도, 날 수도 없다오. 길고 긴 방황의 세월 흐른 뒤, 그대 만나 참 사랑을 알게 되었네. 얼굴 서로 마주하고 두 손 함께 잡고서 꿈을 향해 훨훨 날아오르게 되었네. 그 모습 꽃처럼 눈부시지 않아도, 믿음과 사랑으로 노래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두 마리. 아니 아니 한 마리 사랑의 새, 사랑의 새라네.”
사람의 마음이란 늘 변하기 마련입니다. 나와 다르게 보여 시작됐던 사람들도, 훗날 그 다르다는 이유로 싸늘하게 식어버리기도 하지요. 그렇게 번함 없이 상대의 빈곳을 채우는 사랑이란,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결합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그러한 사랑의 모습을 담기 위해, 각자의 결함이 지닌 이들이, 서로의 결함을 채워주고 함께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이가 다른 모습의 톱니가 만나서,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랑의 노래>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박수진 시 김혜경 곡 <사랑의 노래>였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2월 14일 방송>
2. “공식 예배에 대한 교훈(1-15절)”을 읽었습니다. 예배에 관한 고전적인 용어로 Lex orandi est lex credendi (The rule of prayer is the rule of belief) 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황 코엘레스티누스(주후 422-432) 때부터 사용되는 말인데, 직역하면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이다.”는 의미이며, 넓게는 예배의 규정이 신앙을 규정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신앙과 신학을 규정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생활이란 기도생활의 다름 아니며, 신앙생활의 목적은 올바르게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이래로 기독교회는 예배를 말씀과 성례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드리는 예배와 성찬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장 바람직한 예배의 유산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물론 로마 가톨릭교회나 희랍 정교회 루터교회와 성공회 등 예배 의식(儀式)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에서는 매주 성찬을 강조하는 것에 반해서, 칼뱅의 장로교회와 알미니안 교회에서는 1년 2회 혹은 4회 등의 성찬을 시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간구, 기원, 간청 그리고 감사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기도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디모데에게 사신(私信)이면서 교회 공동체를 위한 회람(回覽) 성격의 서신을 쓰고 있는 바울 사도의 역사적 삶의 정황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들처럼 공동체가 있는 곳에 회당을 가질 수도 없었고, 가르칠 교사로서 랍비도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자연히 예배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배라고 하면 기도하는 일이 전부였음에 분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1세기를 전후해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나, 그 보다는 조금 앞섰던 바울의 서신들을 읽을 때, 문자적으로 읽어서는 안 될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세기 초대교회의 삶의 자리(Sizt im leben)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성경의 본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교회가 힘써 할 일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그 의미를 깨우치는 것과 함께, 온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에 열심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기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기독교회가 가르치는 기도는 일반 종교의 기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일반 종교는 기도자의 소원을 이루는 방편으로써 기도한다 말할 수 있지만, 기독교회가 가르치는 기도는 하나님의 은총에 맡기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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