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81(2023. 3. 24. 금요일).

시편 시 121:7-8.

찬송 28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유혹이 되기도 하지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봄기운은, 마냥 늘어져 있을 수만은 없게 자꾸 마음을 재촉하곤 합니다. 시인 윤공강은 바로 그런 봄날의 서정을 <아지랑이>라는 시를 통해 담아냈습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먼 들판의 정경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뭔가를 읽어냈는지도 모르겠네요. 오랫동안 잊고 있던 막연한 그리움,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간절한 그리움과 하나가 된, 들릴 듯 들릴 듯 나를 부르고 있는, 봄날의 아름다운 정경 말입니다.

    “먼들에서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 아지랑이 속으로 달려도 달려가도, 소리의 임자는 없고, 또 다시 또 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 먼들에서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 또 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 멀리서 더 멀리서, 들릴 듯 들릴 듯, 들리는.”

    시인 윤공강은 뛰어난 감수성으로 여러 서정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던 문인입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카프카의 영향으로 조금은 어둡고 실존적인 글을 썼습니다만, 후기로 가면서 곱고 서정적인 감수성의 시들을 주로 발표를 했지요. 윤용하의 <달밤>이나 나운영의 <별과 새에게> 이와 같은 가곡은 바로 그러한 윤공강의 감수성을 담아 낸 작품입니다. 마흔을 채 살지 못하고 요절했습니다만,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그의 시어들은 여전히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들릴 듯 들릴 듯 나를 부르고 있는 봄날의 정경, 아지랑이가 아른 거리는 나른한 봄날의 서정이 그려지는 것 같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322일 방송>

 

2. “생명의 빵 4(52-59)”을 읽었습니다. 2세기 순교자 가운데 저스틴(유스티누스) 이란 분이 주후 140년경에 쓴 <변증서>에는 초대교회의 예배가 소개되고 있는데, 말씀의 예배를 드린 후에 예배당의 문을 걸어잠그고 세례를 받은 이들만 남아서 성찬의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얼마나 궁금했겠습니까? 그런데 문에다 귀를 대고 들어보니 놀라운 얘기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받아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라.”고 하질 않나, “받아 마시라.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피라.”는 얘기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예배 의식 때문에 초대교회가 사람을 잡아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집단이라고 박해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예시라 하겠습니다. , 그러면 주님의 이 말씀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은 당신이 지실 십자가의 의미를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일을 말한다 하겠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살이 찢기시고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까지 다 말라 버리셨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 십자가의 사건은 바로 우리들 인간을 대신해서 죗값을 치르시는 구체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지막 만찬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떡을 떼고 잔을 나눌 때마다 당신을 기억하게 하는 방법으로 삼으신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주님의 현존으로 이해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말씀이 읽히거나, 주님의 말씀으로 설교하거나, 주님의 성찬이 거행되는 그 자리에 주님은 언제나 현존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방 종교처럼 어떤 열광적 엑스터시에서나, 신비적인 현상에서 주님을 찾으려 하지 않고, 오직 이 세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 주시는 주님의 현존을 신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역사 속에 오셨던 주님의 그 모습을 오늘의 교회에서 찾을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이른바 주님의 화육(化肉/incarnation)은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모범으로 살아야 할 주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주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오늘의 크리스천들에게서는 주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아픔을 토로한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가 아니라 섬기려 오셨고, 사랑을 받으려고 가 아니라 사랑을 주려고 오신 주님인데 말입니다. 요즘 교세가 형편없이 곤두박질을 친다고 난리가 난양 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 크리스천들이 제 정신을 차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치하나 공산 치하에서도 크리스천의 기개(氣槪)를 유감없이 보여줌으로 당당했던 선조들을 기억하며, 조용히 주님을 본받고 살아가자는 말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 교회는 시련과 역경 속에서 오히려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아름다운 사랑과 평화의 꽃을 만개할 것입니다.

 

3. 봄비가 내려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희 집 뜰에는 목련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지금 막 꽃망울을 맺고 있고 한두 개가 꽃잎을 펴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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