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86호(2023. 3. 29. 수요일).
시편 시 123:3-4.
찬송 50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보통 누군가의 첫 인상을 결정할 때, 그 사람의 외모와 표정이 80%, 목소리가 13%, 그리고 인품과 성격은 7%만으로 판단하게 된다고 합니다. 짧은 시간에 성품까지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외모로 첫 인상이 결정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중요한 건 이렇게 한번 각인된 첫인상은 바꾸기가 어렵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밝게 웃는 표정, 또 따뜻하고 정중한 목소리를 잃지 않은 것이, 좋은 대인관계 형성에 비결이라고 하는데요. 웃는 얼굴, 또 밝은 목소리,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의욕과 즐거움을 주겠지요. 오늘도 환한 웃음 잃지 않는 하루되시기를 바랍니다.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8년 3월 31일 방송>
2. “목자와 양(1-6절)”과 “착한 목자(7-18절)”을 읽었습니다. 첫 단락은 그리스도 예수와 성도들의 관계에 대해서, 둘째 단락은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성경에서는 목자라는 단어 포이맨(ποιμην)은 “보호하고, 돌보고, 양육하는”이라는 동사 포이마이노(ποιμαιναιω)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목자라는 사람의 역할은 보호하고 돌보는 일이며 양육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어머니라는 사람의 역할과도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를 보호하고 돌보고 양육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그 자체로 숭고한 역할을 하는 존재이듯 목자 역시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양이란 단어 프로바톤(προβατον)은 “앞만 바라보고 걸어가는” 존재라는 뜻의 포로바시스(προβασις)란 말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은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 앞서 가는 것만을 따라가는 존재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양은 뚜렷한 자신의 주관이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바보스러운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우리들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종류의 목자를 필요로 합니다. 혈통을 이어주고 기본적인 생존을 돌보고 보호해 주는 부모라는 목자와,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갈 지식과 능력을 돌보고 양육해 주는 교사라는 목자, 그리고 우리들 영혼의 눈을 떠서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돌보고 양육하는 영적인 스승인 목자가 그들입니다. 그런데 부모라는 목자를 제외하고는 양인 우리들이 교사라는 목자와 영적 스승인 목자를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경향입니다만, 예전부터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밝게 열어줄 스승을 찾아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가령 퇴계 이황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수많은 전국의 유생들이 도산서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영주의 소수 서원, 경주의 옥산 서원, 함양의 남계 서원은 당시로써는 젊은 유생들의 배움터가 되었던 것입니다. 양들은 자신의 목자를 구별하는 분별력이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목자만이 가지고 있는 음정과 음색 그리고 특징들을 주의 깊게 익혀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처럼 온갖 소리들로 정신을 잃게 만드는 소음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분별할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심각한 과제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따라가야 할 주님의 음성이란 어떻게 분별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최선을 다해서 성경의 중심사상을 지키려고 훈련받은 교사와 목사를 선택하는 일일 것입니다. 제가 대학 2학년 때 영락교회 장로님을 부친으로 두신 교수님이 계셨는데, 장로님이 별세하셔서 운구요원으로 장례예배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회는 박조준 목사님이 설교는 한경직 목사님이 맡으셨는데, 앞자리에서 눈을 감고 듣게 되었는데, 두 분의 음성이 너무 닮아서 몇 번이고 눈을 뜨고 확인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후임으로 오신 박 목사님이 한 목사님의 음성을 따라하신 것은, 교인들에게 세대교체기의 파열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후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짜 주님의 뜻을 전하려는 목자를 찾아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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