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85(2023. 3. 28. 화요일).

시편 시 123:1-2.

찬송 44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어느 유명한 가수가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불쑥 달아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어느 주말에 젊은이들이 별로 없는 한적한 산골로 여행을 갔었다는 데요. 그런데 거기서도 뜻 밖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답니다. 텔레비전에서 봤다면서 한 어른이 반갑게 다가오셨다지요. 하지만 그 마을 사람 대부분은 그런 유명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 올 리가 없다면서, 그 어른이 잘못 본 것이라고 했고, 결국 잘못 본 것으로 결론 나게 됐답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달아나고 싶었던 그 가수는 왠지 그럴수록 자신을 알리고 싶어 졌다는 군요. 그래서 그 어른들 앞에서 자신의 히트곡을 목청껏 불렀답니다. 마이크도 없이 그렇게 열심히 노래해 본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요. 그 얘기를 듣고,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그런 노래를 가진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나를 증명해 줄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모르겠네요<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8329일 방송>

 

2. “바리세파 사람들의 생트집2(18-34)”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35-41)”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믿음을 아주 쉬운 일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흥사가 믿습니까?” 라고 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멘!” 하며 큰 소리로 화답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사람들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그처럼 헤프게 고백할 수 있는 말이 아닌 때문입니다. 목숨을 걸만큼 신중해야 하고 중요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이 믿음을 가르치고 또 믿음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방법은 무려 40년이란 길고 긴 수련기간을 들이신 때문입니다. 40년을 하루같이 아침에는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주시면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가르치셨지만, 유대인들은 물론 출애굽기를 아멘, 아멘 하며 믿는다는 사람들은, 실상은 아무 것도 믿고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쉬지 않고 주시옵소서!”를 외치고 있는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주기도를 가르치실 때, 딱 한 구절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하셨는데, 이때의 말씀은 오히려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신 것을 확인하는 의미였을 뿐, 결코 일용할 양식을 주실까 주시지 않을까를 의심하는 의미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참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를 읽을 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차곡차곡 쌓이도록 했어야 합니다. 아니면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소경이었다가 눈을 뜬 그 구걸인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쫓겨난 것을 들으신 주님이 그를 찾아가셨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인자를 믿느냐?”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자 그 구걸인은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 믿습니다.”고 고백했다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저 유명한 말씀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보 같은 바리새파 사람은 자신들이 눈 뜬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스스로 눈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그게 문제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진솔하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나는 지금 눈 먼 사람인가? 아니면 눈 뜬 사람인가? 주님 말씀대로라면 눈먼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도대체 눈이 멀거나 눈이 떠 있다는 말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눈으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바라보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김민기의 <그 날>이라는 노래는 꽃 밭 속에 꽃들이 한 송이도 없네. <중략> 싸움터엔 죄인이 한 사람도 없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예배당엔 예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헛된 것을 찾고 있고, 헛된 것을 섬기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전쟁 7년 동안 사망한 유대인은 1,337,490명인데, 그 중에 가장 많은 희생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왔다고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었던 하나님은 그곳에 부재(不在)했던 것입니다. 슬프게도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가운데 죽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를 처절하게 느끼며 불신가운데 죽었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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