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87호(2023. 3. 30. 목요일).
시편 시 124:1-5.
찬송 47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구 위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이름은, 문화예술에 있어서도 한동안 웃지 못 할 일들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월북 작가 월북 예술인이라는 목록을 만들어서, 그들의 창작물을 금지시킨 것이 그 예겠지요. 시인 정지용의 작품이나 작곡가 윤이상의 곡이 같은 이유로 금지됐고, 유난히 폄하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가곡 <산유화>의 작가 김순남 역시도 마찬가지였지요.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소월의 시가 지닌 서정을 잘 담아내 낸 곡입니다. 꽃이 지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 전해져 오지요.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민족 가곡으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렸던 곡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곡가가 월북 했다는 이유만으로 전곡이 금지되었다가, 1988년 10월 정부의 <월북 음악가 작품 규제 해제> 조치로 해금되어 그제서야 다시 들을 수 있게 됐지요. 작곡가 김순남은 악기 가운데서 특히 피아노를 좋아했던 것으로 전합니다. 작곡 역시도 피아노를 통해서였고요. 쉼 없이 8시간 동안이나 피아노만 연주한 탓에 탈진을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덕분에 김순남이 월북한 뒤에 남겨졌던 피아노는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되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3월 31일 방송>
2. “유대인에게 배척을 받으신 예수(22-42절)”을 읽었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지속적으로 비난이나 미움을 받는 일은 엄청 괴로운 일입니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움을 받는 사람의 자업자득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하릴없이 남을 미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미워할 때 뒷담 수준으로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소극적인 경우가 있는가하면, 아예 면전에서 그것도 공개적으로 미움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경우는 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으로 인해서 많은 논쟁을 하였고 미움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여기에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이 추가되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라고 분명하게 천명한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참람하다는 말을 하며 돌을 들어 치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유대인들과의 대화중에는 유대인들의 화를 돋우는 언쟁도 소개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신들이라고 부른 구절을 꺼내신 것입니다(시 82:6).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하신 아삽의 시를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아들 호칭은 결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아니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으로 읽힙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심 주제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동행하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혼란을 겪는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듣고 실행하는 삶이 진행 중이냐에 달려 있다 하겠습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신앙하는 이상적 목표와 현실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예배를 마치고 세상을 향할 때, “이제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실천하는 삶을 사십시오.”라고 선언할 때, 그 감격과 결심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에서도 세상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 예배가 끝나자마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교회 옆 팝(pub)으로 들어가 세상 이야기로 박장대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아직 한국 크리스천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오래지 않아 이런 전염병이 불어올 것입니다. 하도 신기해서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주님은 철저하게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게 십자가에 못을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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