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48호(2023. 9. 7. 목요일).
시편 시 18:13-15.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서점이나 찻집은 지금은 파리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헤밍웨이의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만, 사람들은 그가 자주 들렸던 커피숍과 서점에 가는 것만으로도 마치 그의 흔적을 진짜로 찾아낸 것처럼 느낀다고 하지요. 오래된 책들과 커피 향기 안에서, 헤밍웨이와 직접 소통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말입니다. 자시나마 현재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임에 틀림없겠지요. 그 어떠한 방법을 통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외국에는 도심의 뒷골목에 고서점이 많다고 하지요. 그 의미가 좀 다릅니다만, 고서점은 우리의 헌 책방과 비슷한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고서점에 가본 사람들은, 적게는 몇 십 년에서 길게는 몇 백 년, 심지어 천년이 넘는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란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먼지 아래 놓여있던 고서만의 독특한 향기에 취하게 되기도 하겠고요. 오래된 책들 사이로 전해졌던 것은 향기만은 아니겠지요. 책들이 지닌 시간의 간극을 넘어서, 문화의 어제와 오늘이 이어지는 기분도 분명 더불어서 전해졌을 테니까 말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9월 5일 방송>
2. “첫째가는 계명(28-34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한 이름 모를 율법학자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밝히거나 또는 이웃 사람에 의해서 밝혀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와는 달리 처음부터 이름을 감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성경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당시로써는 명문가의 사람이거나 권세가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데 반해서, 이름이 밝혀진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문제아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모든 계명 중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학자답게 유대인이 마땅히 생각하고 지켜야 할 첫째 계명에 대해서 질문한 것입니다. 저는 그가 매우 현명한 유대교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우리도 이 율법학자의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까? 지난 5일자 국민일보는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 우찌무라 간조(內村監三)가 자경단에서 활동했다는 기사를 전했습니다. 자경단이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사건 후 흉흉한 민심을 돌리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확대 재생산해서 무려 23,058명의 조선인을 무참히 학살하였는데, 그 학살의 주범이 자경단이었습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쳐, 김교신, 함석헌 유달영, 원경선 등으로 하여금 무교회 운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무교회주의 운동은 지금도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데, 특히 진정한 교회란 신자들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자리이지 건물이 아니라는 점, 엉터리 교회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점, 세례와 성찬 등 성례전의 의미를 소극적으로 이해한 점, 참된 성경의 해석이란 각 사람의 믿음과 은총의 분수대로 깨우침을 받는 것으로 이해한 점 이었습니다.
율법학자의 질문에 대해서 주님은 신 6:4-5을 근거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요, 둘째는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는 주님의 대답에 반색하며 동의를 표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를 향해서 “너는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율법학자에 대한 주님의 칭찬에서 무엇인가를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지내느냐도 아니라, 그 중심(中心)에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에 대한 시기심이나, 많이 배운 사람에 대한 질투심, 그리고 남다른 재능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왔다고 말입니다. 어느 한 순간도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품고 고민하고 잠 못 이루며 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오늘 우리의 성경에 등장한 율법학자는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많이 고민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물었고, 주님으로부터 확인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 야훼이시라는 것과 그 분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나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귀하고 복된 삶이라고 말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은 물론 성화/聖畫나 성상/聖像에서도 말씀의 뜻을 살려내야. / 막 13:1-13. (0) | 2023.09.09 |
---|---|
헌금의 정신과 목적에 맞도록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 막 12:35-44. (0) | 2023.09.08 |
부활의 세계 : 산 자들과 교제하시는 하나님. / 막 12:13-27. (0) | 2023.09.06 |
권위는 무엇이고, 누가 주는 것일까? / 막 11:27-12:12. (0) | 2023.09.05 |
기독교의 모든 진리는 성경말씀에 근거해야. / 막 11:12-26. (1) | 2023.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