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75호(2023. 10. 4. 수요일).
시편 시 22:4-6.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앞서 양조장에서 천사의 몫이라 불리는 그 증발된 술의 분량은, 어찌 보면 우리의 까치밥과도 일맥상통하지도 않나요?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먹을거리. 그만이 주는 무언의 대상과 나눈다는 기쁨은 서양에서도 존재 했나 봅니다. 우리의 풍습 가운데 ‘고스래!’ 하는 것이 있었지요? 나들이를 가거나 낯선 자방에 갈 일이 있을 때, 준비된 먹을거리를 던지면서 그 지역의 지신에게 평안을 기원했던 풍습 말입니다. 그런걸 보면 나누고 더불어 즐기는 것은 누군가 특별히 일러주지 않더라도 깨닫는, 인간의 본능과도 같습니다. 시대와 장소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본능 말입니다.
“감나무 꼭대기에 하나 남은 붉은 감이 새를 기다리고 있다. 까치나 까마귀 또는 그 어느 부리에라도 속살 꽃처럼 곱게 조이고 싶어라. 하늘로 오르고 싶어, 날개 없이도 구름이 되고 싶어, 붉게 익은 마음 하나. 감나무 높은 가지에 걸어둔다.”
유년기 동네 어귀에서 보았던, 가장 큰 감나무 꼭대기의 까치밥을 기억합니다. 일부러 따기 곤란한 부분의 남겨진 열매들은 어른들은 까치밥으로 남겨 두었지요. 새들이 정말 먹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만 이 까치밥의 의미는 이런 것 아닐까요? 야박하게 굴지 않고 그 언제든 그 어떤 대상을 위해서 마음을 남겨 두는 것 말입니다. 수확을 지나고 열매로 풍성했던 감나무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헐벗고 남겨진 것보다, 그편이 덜 야박하지 않을까 합니다. 높이 남겨져 있는 까치밥, 그 곳에 실린 시인의 마음. 왠지 서양 노래에 있는 큰 나무 가득한 노란 리본의 이야기가 함께 연상되기도 합니다. 김 윤 시 오 숙자곡 <새를 기다린다> 들려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0월 4일 방송>
2. “아합이 라못 길르앗의 탈환을 꾀하라(1-12절)”과 “미가야가 아합의 패전을 예언하다(13-28절)”을 읽었습니다. 본문에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 사이에는 같으면서도 다른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둘로 나뉘어져 있어도, 한 조상과 형제들로 구성되었다는 점과,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솔로몬 왕이라는 거물급 왕이 치리하던 시절의 학정(虐政)을 계승하는 남왕국과는 다르게 북왕국은 개혁을 주장하며 반발하는 등 정치적 생각이 진보와 보수로 갈렸다는 점에서 달랐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대로, 보수는 현상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것에 반해서, 진보는 현실과 다른 새로운 기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실험정신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승률은 반반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일이 같은 반복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도전을 택하는 쪽입니다. 그것은 힘든 삶을 자초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10년을 준비한 대학공부도 빠듯한데도 불구하고,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를 껌팔이와 구두닦이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가르치겠다고 당차게 나선 야학을 1학년 때부터 시작하였던 것도, 목회 초년시절에 무보수로 성경을 가르치겠다고 부산 YMCA와 YWCA를 찾아가 문을 두드린 것도, 먼 미래에 북한에 교회를 개척할 때 수고할 인재육성은 남한 출신이 아닌 중국의 조선족이 낫겠다는 한 지인 후원자를 도와 공산권 교회 지도자들을 육성했던 일들은 편안한 보수보다는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진보를 택한 이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북왕국은 진보를 가장한 또 다른 왕권을 노리는 정치모리배들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진위를 가리기에는 난해한 현실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시리아에 빼앗긴 라못 길르앗을 도로 찾으려는 북왕국 아합왕은 남왕국 여호사밧에게 같이 싸워주겠느냐고 묻습니다. 여호사밧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당장 야훼 하나님께 이 싸움을 해야 할 것인지 여부를 물어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먼저 아합이 자기의 예언자들 400명을 불러 모아, 라못 길르앗을 치는 것이 좋은지 여부를 묻자, 그들은 공격하면 왕의 손에 붙이실 것이라고 합창을 합니다. 그러자 남왕국 왕 여호사밧이 다른 예언자를 찾자, 아합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예언자가 한 사람 있는데 그는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고 하자, 그를 부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를 데리러 간 특사에게 언질을 줍니다. 4백 명의 예언자들이 왕의 뜻대로 되리라 예언했으니 당신도 그리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합왕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대신하려고 한 것입니다. 웬만하면 위세에 눌려서 대세를 따를 만도 할법한데, 미가야는 매우 당찬 위인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흩어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왕이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곤 미가야는 하나님께 받은 신탁을 전합니다. 야훼 하나님은 아합의 모든 예언자들 입에 거짓말 하는 영을 넣으셨고, 야훼 하나님은 아합 왕에게 재앙을 내리시기로 정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거짓 예언자들의 두목 격인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치며 호통을 쳤지만, 미가야는 주눅 들지 않고 왕권이나 세력으로 아무리 윽박지르고 하나님의 종 미가야를 감옥에 가둬두어도, 싸움터에 나간 아합은 무사히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거짓을 진실인양 말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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