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45(2024. 3. 22. 금요일).

시편 시 53:1-3.

찬송 82(통일찬송).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문학사를 운운할 때, 김 소월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요. 우리 가곡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곡의 작곡가라면 소월의 시에 작곡한 곡이 하나 이상은 있다는 말이 과언은 아닐 만큼, 소월은 우리 음악가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중 작곡가 하 대응의 경우엔 더욱 특별했지요. 1983년 타계한 작곡가 하 대응은 생전에 다작을 한 작곡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 대응의 많지 않은 가곡 작품가운데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 대부분이었지요. <초혼> <못 잊어> <가는 길> 그리고 <>까지 작곡가 하 대응은 소월의 시에 유독 애착을 보였습니다.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심해산골 영/넘어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는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 불귀 다시 불귀/ 산수 갑산을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위에서 운다/ 산수 갑산 가는 길은 고개 길

    작곡가 하 대응은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본래 음악에 재능이 많았던 것으로 전하고요. 휘문 중학에 재학 중일 때에는 바이올린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휘문 고보를 졸업하고 작곡가는 바로 일본으로 도쿄로 유학을 떠납니다. 전공은 바이올린이었지요. 그렇지만 학기가 끝날 무렵 지도교수는 하 대응에게 성악에 대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결국 바이올린에서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지요. 유학중이던 당시 전 일본 음악 콩쿠르에서 성악부 2위를 차지할 만큼, 성악에 있어 하 대응의 뛰어난 것이었다 전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유학을 앞두고 부모의 반대로 귀국을 하고, 이후 음악 교사로써의 생을 꾸려가지요. 성악 도로써 무대에 서지 못하는 대신 곡에 쏟은 음악적 열정이 느껴집니다. 김 소월 시 하 대응 곡 <>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324일 방송>

 

2. “질그릇에 담긴 보물(1-15)”을 읽었습니다. 인간을 질그릇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기막힌 표현이 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이야기하는 불가/佛家에서는 인간 모욕죄목을 붙일지 모르겠다는 뜻이 전자/前者이고, 인간의 덧없음과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삶의 대견스러움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후자/後者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 인용한 질그릇은 인간을 후자에 비유한 것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한 대학 동기생에게서 10만원 벌금을 내더라도 손자자랑을 하겠다며 손자가 쓴 일기장을 훔쳐본 얘기를 전해 왔습니다. <쓰레기>라는 제목의 시 같았는데, “우리 반과 거리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먼지 낀 쓰레기들/ 그냥 두면 얼마 안가 서로 합체해서 괴물이 될지 모른다/ 산책하는 내가 얼른 주워서 주머니에 둔다/ 합체 못한 쓰레기들이 쓰레기통에 시무룩해 하고 있다별의 별 잡동사니가 한 자리에 섞여 있는 쓰레기를 보고, 어린 마음에도 이것들이 괴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하는 그 마음이 대견했습니다. 훗날 시인이 될 사람에게 수학은 도움이 안 될 거라며 낙제 점수만 면케 해 달라 했던, 그래서 마침내 시인이 된 고교 동창생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들어온 눈에는 별 것 아닌 듯해도, 한 마음으로 곧게 키우면 재목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이 도닥도닥 잘 격려하면 쓸모 있는 여문 사람이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보화를 담아주셨다 말합니다.

    한두 번 읽은 말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3학년의 시와 사도의 편지를 읽으며 정신이 번뜩 났습니다. 이 늙고 병든 몸에도 보화가 담겨 있다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그동안 그 보화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안달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사도는 그 보화를 찾아내려는 사람들에게 오래 기다리지 않게 답을 해 버린 것입니다. 그 보화란 예수의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생명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궁지에 몰려도 빠져 나갈 길이 있으며,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습니다.”고 까닭을 알려준 것입니다. 겉으로는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지만, 결국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고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116:10)는 말씀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이와 똑 같은 믿음의 정신을 가지고 믿고, 또 말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분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시고, 여러분과 함께 우리를 그 분 곁에 앉히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계시다고.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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