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48(2024. 3. 25. 성주간 월요일).

시편 시 54:4-5.

찬송 22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 박 목월은 현대 한국 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1939년 등단해서 1978년 타계할 때까지, 목월은 많은 시와 산문을 남겼지요. 동시와 산문의 작가로써도 이름을 알렸습니다만, 역시 박 목월이라는 이름 앞에는 시인이라는 직함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청록집]에서부터 생전의 마지막 시집인 [모순], 사후에 출간된 [크고 부드러운 손]에 이르기까지, 박 목월이 시인의 이름으로 이루어낸 시적 경지는 참 크고 너른 것이었습니다.

    “달 안개 높이 오르고/ 청밀밭 밤 산기슭의 밤 비둘기/ 스스로 가슴에 고인 그리움을/ , 밤길을 간다/ 풀잎마다 이슬이 안고/ 눈 귓물이 우는 길을/ 달빛에 하나하나 꿈을 날리고/ 그 떠가나는 푸른 비둘기/ 눈물 어린 눈을 향긋한 달무리를/ 길은 제대로 숨어 버렸다

    박 목월의 대표작들이 담고 있는 계절은, 이 시의 계절처럼 이른 봄이 많이 있습니다. 방금 들으신 청밀 밭이 그렇고요 먼 산 선운사로 시작되는 <청노루>도 그렇습니다. 만물의 생명이 깨어나기 직전의 긴장감. 그 고요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목월의 시 안에는 늘 존재하지요. 작곡가 정 덕기는 이 곡을 대학 1학년 무렵에 작곡을 했습니다. 본래 시인이 되고 싶었던 작곡가는 시인으로써의 꿈을 간간히 목월의 시집을 뒤적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봄 밤 푸른 밀밭에 담고 있는 고즈넉함이, 곡의 분위기를 통해 전해져 옵니다. 박 목월 시 정 덕기 곡 <청 밀밭>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328일 방송>

 

2. “땅의 성전과 하늘의 성전(11-14)”을 읽었습니다. 시골출신의 한 장로님이 성지순례를 갔는데, 대부분의 성지순례지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지은 것들로 감동을 받으신 모양입니다. 그런데 로마와 소아시아 지방을 둘러보고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찾았는데, 비록 면죄부를 팔았다 하더라도 그 성당은 잘 지은 일 같다는 말을 해서 좌중을 놀라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땅의 성전이 저렇게 아름답거든 하늘의 성전은 어떨까하며 기대가 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평생 초가집에서만 살던 촌로에게 5층짜리 반듯한 벽돌집은 평생 땅에서는 살아볼 꿈조차 꿀 수 없어서 하늘나라에서 그런 집에 살아보려는 희망을 가지는 때문인지, 계시록을 강의하는 목사님들은 5층짜리 하늘 집을 꿈꾸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물질적인 가치에 함몰되어서, 영적이며 정신적인 가치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때문에 생기는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천국 얘기가 하나 나오는데, 아브라함 품에 안긴 거지 나사로 이야기입니다(16:19-31). 이 비유를 그림으로 그린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의 한 그림에는 부자가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악사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불거진 배를 내밀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를 개들과 함께 주어먹는 나사로가 땅 바닥에 엎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대해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그는 단 한번 만이라도 배부르게 빵을 먹고 깨끗하고 시원한 물 한 그릇을 마시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나사로 앞에 부자를 소환했습니다. 뜨거운 지옥의 불에 달아올라 몸과 마음을 축여줄 시원한 물 한 모금이 간절하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국에 대한 희망을 제대로 가지자고 다짐했습니다.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밥과 그 밥을 소화하기에 알맞은 반찬과 물 한 그릇이 있으면 족하다고 말입니다. 천국은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니라, 평화와 기쁨 그리고 행복이 가득한 곳이면 더 할 나 위없이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유대인의 대속죄일과 예수님의 대제사장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히브리력 710(20241011/20241012/)에 대속죄일로 지키는데, 단 하루 동안에 대제사장이 지성소를 4번을 출입하면서 자신과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를 드리는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매년 이 번거로운 속죄제와 번제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이른바 제사의 효력이 1년 밖에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이 직무를 행하실 때까지는 계승되고 기억되어야 할 참 신앙의 그림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의 지성소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대속죄일이 필요 없게 되었다니 말입니다. 그것은 수송아지나 수 염소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제사제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위한 예표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타내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느끼는 일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성 주간이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참회와 기쁨의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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