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50(2024. 3. 27. 성주간 수요일).

시편 시 55:1-3.

찬송 44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 점점 불편해 집니다. 사고의 기준이나 사고의 전개 방식이 달라서, 나와 다른 의견을 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과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는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순간 내 주위에는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요. 충돌을 피하기 위해 그보다 먼저 스스로가 편하기 위해서,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우선했던 때문이겠습니다. 조화는 비슷한 상대끼리 어울린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서로 다른 상대끼리 절충하며 어울리는 것, 그것이 조화라는 말이 지진 말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엇비슷한 사람들과 늘 고만고만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합니다. 오랜 전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어울렸던 때도 있었는데요. 지금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서로의 삶은 이미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야기의 화제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지요.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그러한 마음은 사교의 범위와 깊이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흉금을 내 보이기보다는, 불편해 질 것을 먼저 염려하곤 하지요. 자극도 없고 성장도 없는 관계, 안주의 대가는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비슷한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자극이 없으면 성장하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려봅니다. 자극은 낯설고 불편하게 사람을 변하게 만들지요. 서로의 말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반론이 필요하다면 언쟁을 해도 좋을 겁니다. 불편할지라도 용기를 내서 말꼬리를 물고 늘어져도 나쁘지 않겠지요. 다름을 방치하거나 묻어두지 않고, 그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이미 그 자체가 조화의 시작이 아닐까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329일 방송>

 

2.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시다(21-30)”을 읽었습니다.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에 비해서 유월절 만찬과 연관된 일화들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만찬 중에서 예수님을 팔게 될 가룟인 유다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당신을 팔 자가 있다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누구를 가리켜 하시는 말씀인지를 몰라서 서로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에게 눈짓을 해서 그 사람이 누군지를 여쭈어보게 하였습니다. ‘주님, 그 사람이 누굽니까?’하고 직설법으로 묻자, 예수님은 내가 빵을 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고 하시며 가룟인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 모든 제자들의 궁금증이 풀린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가룟 유다가 어떻게 배신의 과정을 밟게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해야 하겠습니다. 가룟 유다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열 한 제자들 역시 주님을 배신하고 원수들에게 팔아버릴 계획을 가진 가룟 유다를 알게 되었으면서도, 어찌하여 이를 막아서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또한 가룟 유다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돌아볼 기회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악행을 멈추지 않고 진행했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이 질문을 하면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진리에 눈을 뜰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잘못을 모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변명처럼 주절거리는 말, ‘그 때는 그게 그렇게 무서운 잘못인지를 모르고 그랬습니다.’는 소위 몰랐다는 변명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범죄자들의 행적에서는 거의 하나같이 한 사람도 모르고 죄를 지은 사람은 없었다.’라고 결론을 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자신이 하는 짓이 얼마나 어리석고 심각한 잘못인줄을 잘 알면서도 그 죄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변명하거나 용서를 구할 일말의 여유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국에서의 심판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재판장 앞에 세우고 죄목을 열거할 때, 두 말도 할 수 없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죄의 수렁에 빠져들기 시작한 인간은 아무리 돌이켜보려고 해도 일단 출발한 이상 돌이키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마귀의 종이 된 후에는 뻔뻔스럽게 악마의 종노릇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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