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52(2024. 3. 29. 성주간 금요일).

시편 시 55:4-7.

찬송 54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심 보선의 <30> 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30,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다 자랐는데 왜 사냐고 하는 그 시구처럼 서른이 넘으면 다 자란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왜 사냐고 말할 수만은 결코 없는 나이가 30대이지요. 다 자랐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뭔가 해내야 하는 때, 바로 그 때가 30대 아닌가 싶은데요. 3월의 마지막 날 아침, 삼삼한 3월이 이렇게 다 지나간다는 사실이 아쉬워서 일까요? 사랑은 여전히 오고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신열이 몸 들뜨게 될 거라고, 시인에게 대답해 주고 싶어지네요. 4월에는 더 많은 꽃들이 피어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9331일 방송>

 

2. “고난 받는 종의 노래(52:13-53:12)”를 읽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게 달려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 금요일입니다. 보통은 이날은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架上七言)을 주제로 설교하는데, 이번에는 이사야의 말씀으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남 유다 제10대 왕 웃시야 왕 죽던 해부터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14대 왕 므낫세에 이르기까지 대략 BC 740-680 사이의 60년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후 30년과는 무려 700년이라는 간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 받은 신탁으로 십자가의 사건을 너무도 생생하게 예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십자가의 전체적인 모습을 사람들이 그를 보고 기가 막혀 했다.”고 말하며,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고, 일찍이 이런 모습은 눈으로 본 사람도, 귀로 들은 사람도 없었다고 (52:13-15) 말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런 자신의 예언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사람이 만무할 것이라 덧붙입니다. 아무도 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 분에게서는 당당하거나 멋진 모습도 없고,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어서, 멸시를 받고 퇴박을 맞아도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우리도 덩달아 그분을 업신여겼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바로 그 분이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을 대신 앓아주셨고, 우리가 받을 고통을 대신 겪어 주신 것입니다. 그가 당연히 천벌을 받고 있거나 하나님께 잘못하여 매를 맞는 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가 찔림을 우리의 반역죄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채찍을 맞고 상처를 입은 것은 우리를 성하게 고쳐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온갖 굴욕을 겪으시면 서도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으시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명 억울한 재판임에도 걱정해 주는 이 하나도 없고, 폭행을 저지르거나 거짓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죄인들처럼, 불의한 자처럼 처형을 당하고 그들 곁에 묻히셨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야훼께서 뜻이 있어 하신 일로, 자기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은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자기 자신의 의지나 지혜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듣는 사람들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으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상식으로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는 죽전만당이라는 곳에 위치했는데, 가파른 언덕길을 숨이 차게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아 올라가는 그 곳에 정신이상이신 분이 학교 가는 우리들을 붙잡고 무슨 얘긴가를 하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분이 일본에서 공부를 하신 분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을 겪으면서 그리 되셨다고 혀를 차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성경말씀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삿분은 아니셨던 것 같습니다. 불과 수십 년을 앞서 사신 분에게서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이 있었다면, 700년이란 풍상을 겪기도 견디기도 하신 분들의 얘기를 누가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는 일일지라도 그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기록해 둔다면, 어느 오랜 훗날엔 누군가 그 얘기를 풀어가며 흥미를 느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분명 그런 날이 오리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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