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83(2024. 4. 29. 월요일).

시편 시 62:1-4

찬송 18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섞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놀부같이 사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흥부 같은 사람, 그리고 이도 저도 속내를 알 수 없는 무미무취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끔 저는 제 품에 안겨 저를 올려다보는 강아지의 눈빛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왜 이렇게 날 사랑하세요? 정말 감사합니다.’는 눈빛 말입니다. 저는 제 강아지에게 충실합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늘 생각해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고 언제든 밖에 나가 잔디밭에 볼 일을 보겠다면, 추운 한 밤중에도 일어나 문을 열고 닫아 줍니다. 손과 발이 닿지 않는 등과 오금쟁이를 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합니다. 아무튼 말 못하는 강아지에게라도 사랑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혼자지내는 아산생활에서는 유일한 말벗이니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아무런 대가나 공치사를 기대치 않고 다른 사람들, 특히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 신기하고 참 별종이다 싶은 사람들입니다. 시간과 돈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능까지 다 털어서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 , 그래도 세상을 아직 괜찮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 얘기 한 토막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당신이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하는데, 결국은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냐? 세상에 완벽하게 타인을 위한 행동은 없는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얘기죠? 제가 만족스럽고 행복해지면 안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안디와의 만남을 통해서, 캘커타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이제 저는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 일을 하면서 나는 행복했어! 내가 행복한 걸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 거지? 일단 내가 행복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내 행복의 분량만큼 내가 사는 세상의 행복이 불어납니다. 인연이 닿아 내 행복이 다른 사람의 행복과 연결될 때면, 그때부터 행복의 합이 달라집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 더하기 하나는 셋이 되는 겁니다.’(조병준, [제 친구들과 얘기하실래요?], pp.81-82). 박성완, 24.4.28.

 

2. “전 국민이 죄를 씻는 날(1-19)”을 읽었습니다. 내용을 읽지 않고 표제어만 보고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전 국민이 함께 죄를 씻는 날이라니! 저는 여러분보다는 죄가 많아서 흥분을 넘어 까무러치게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습니다. 어떤 분은 기독교는 죄인이라는 굴레에 씌워서 평생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복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죄에 대한 불감증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국민을 대상으로 청력테스트를 하기도 하고, 뻔한 거짓말을 눈 하나 껌뻑하지 않고 저지르고 있습니다. 아마 잘 모르긴 해도 교회의 부패 타락상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서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지 않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고 기고만장들입니다. 우리는 창 11:1-9의 바벨탑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늘 끝에 닿는 마천루가 바벨탑이었는데, 그게 무너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죄의 결과는 멸망인 때문입니다.

    전 국민이 죄를 씻는 데에는 지켜야 할 절차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죗값을 치르는 일입니다. 아론의 네 아들 중 엘르아살과 아비후가 야훼가 명하지 않은 향로의 불을 가져온 죄로 죽음을 당한 후에 야훼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론에게 평일에는 지성소에 있는 속죄판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성소에 들어가려면 황소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수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치라 하십니다. 맨살에 모시 잠방이를 걸치고 모시로 만든 거룩한 옷을 입도록 명하십니다. 그 밖에도 목욕을 한 후 옷을 입어야 하고, 수 염소 두 마리 중 제비뽑아서 한 마리는 야훼를 위해서,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들 귀신)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라 명하십니다. 이렇듯 제사장 아론과 그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백성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온 이스라엘 회중을 위해서 속죄제를 절차대로 드릴 것을 명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모든 속죄제는 제사장 자신과 그 가족을 위한 것으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교회 지도자들의 죄가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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