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00호(2024. 5. 16. 목요일).
시편 시 66:8-9.
찬송 21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대화의 철학자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모든 인간은 나와 너의 관계이거나, 나와 그것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사물처럼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사물과는 구별하여 특별히 실존이라 규정한다. 종래의 인간 이해는 “본질은 언제나 실존에 앞선다”는 원리에 의해 이해되어 왔으나,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말한다. 비유컨대 인간이란 사물처럼 기성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이미 결정된 방식에 따라 살아가지 않고 스스로가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 너의 관계를 인격적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면전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그것의 관계는 상대를 제3자로 여기는 때문인지 비인격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쓴 책에서(찾으려고 애썼으나 결국 못 찾음),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온 유대인들이 본토인인 팔레스타인을 내쫓으면서 정복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대화의 철학자 마틴 부버도 역시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비단 부버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사랑을 강조하는 목사는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 찬 설교를 하고 있고, 섬김을 역설하는 정치가는 지배와 명령을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권위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 신학자는 알브레히트 리츌이다.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이 말 따로 행동 따로 여서 지탄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한번 말하려 할 때마다 세 번 생각하라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이란 명구를 남겼을 것이다.
2.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1-8절)”을 읽었습니다. 공관복음서 모두 취급하고 있는 내용인데, 눅 5:17-26에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집의 지붕을 벗기고 환자를 내려 보내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위급하거나, 주님을 에워싼 무리들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배경을 말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환자를 마주하신 주님은 “안심하여라. 네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곁에 섰던 율법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라고 말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신 주님께서 반문하십니다. “용서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에서 어느 편이 쉽겠느냐?”고 말입니다. 용서받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 중에서 용서받았다는 말이 쉽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저에게 똑같은 질문이 던져진다면, 저는 주저 없이 “저는 두 가지 모두 어렵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최종적인 죄의 용서는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이고, 일어나 걷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사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사인 장기려 박사에게 질문한다면, 그분은 주저 없이 둘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항상 진료를 시작하면서 환자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고쳐주십니다.” 라고 했다 하니까 말입니다. 지금도 이런 기도를 드리는 의사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병원이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가로 막고 있는 죄의 쓴 뿌리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늘 불안하고 두렵고 잠 못 이루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시마고 약속해 주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기도드립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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