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99(2024. 5. 15. 수요일).

시편 시 66:5-7.

찬송 49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교 문화에 영향을 받은 때문인지, 아직도 우리나라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고리타분하다거나 꼴통소리를 들어도 고칠 점을 잘 풀어간다면, 삼강오륜만한 자기 정체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덕목은 없을 것이다. 중국 전한/前漢의 유학자 동중서가 공자와 맹자의 학설을 기초하여 삼강오상설/三綱五常說을 설명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강오륜은 인간간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엄청난 가치를 말하고 있는데, 세상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알맞은 해석을 함으로 나름의 정체성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군신유의/君臣有義는 지도자와 백성들 사이에는 신의/信義가 있어야 한다를, 지도자가 먼저 백성에게 신의를 보여야 한다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일까? 부자유친/父子有親은 아버지가 먼저 자녀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고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현실은 윗물이 흐려서 세상이 혼란스럽기만 한다.

    오래 전에 성탄절 선물을 고르다가 집어든 책이 <그래도/Anyway>라는 책이었다. 열 가지 역설의 진리를 설파하는 책인데, 그 첫 번째 역설의 진리로 사랑하라를 말하고 있었는데, 그 첫 장에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들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람들을 사랑하라.” 그래야 나도 그도 서로 사랑할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박성완, 24. 5. 14.

 

2. “마귀와 돼지 떼(28-34)”을 읽었습니다. 가끔 사람의 정량평가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집니다. 오늘 본문의 평행귀인 막 5:1-15을 보면 약 2천 마리의 돼지 떼에게 한 사람의 정신이 들어가자 강물에 다 빠져죽게 되었다고 했으니, 요즘 돼지 한 마리가 10만원만 해도 2억 원 정도로 값을 매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덤가를 맴돌던 한 정신 이상자를 보신 주님께서 돼지 2천 마리에게로 그 귀신을 내쫓자 그들이 강물로 내달아 빠져주었다는 일화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을 혼란과 무질서한 삶에서 온전하게 돌아오게 하는 데는 무려 2억 원의 돈도 아깝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인 <레미제라블>162년 전의 작품이지만, 언제 읽어도 감동을 주는 것은 소위 개과천선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누군가가 자신 때문에 옥고를 치를 것을 걱정한 주인공 장발장은 자수를 하게 되는 한 인간의 파행/跛行을 택하지만, 우리들에게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하는 일이야말로 그 어떤 선행과 가치로도 가늠할 수 없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독재정권의 치적에도 불구하고 저울질 하는 것을 불허하는 이유라 하겠습니다.

    자본주의의 한 복판을 지나가는 우리들에게 마귀에 붙들려 제정신을 잃고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과, 2천 마리의 돼지가 세상에 주는 가치를 저울질 해 보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의 소위 기독교 국가에서도 신학교와 교회가 문을 닫고 있는 실정입니다. 얼마 전에 만났던 미국인 목사님은 62세에 은퇴를 하겠다고 준비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평생 신학과 목회만 연구하고 힘쓰신 분이 어떻게 남은 40년을 살려하느냐는 물음에, 미국에는 주로 시골에 목사님 없는 교회가 많아서 언제든 설교할 수 있다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기독교의 역사도 석양의 해처럼 저물어간다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진리는 군계일학처럼 시련과 박해의 광야에서 더욱 돋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가 증거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물신숭배/物神崇拜라는 우상에 미쳐버린 현대 크리스천에게 돼지 떼의 제물이 없이는 회생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오늘은 저의 부친 58주기 추모 예배에 9남매 가족들이 저의 집에 모일 예정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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