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55호(2024. 10. 18. 금요일).
시편 89:1-2.
찬송 8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퇴를 하고 매달 한 번은 서점을 들리기로 마음 먹었다. 2016년 여름 어느 날 교보에서 <채식주의자>와 <흰>을 구입했다. 그리고 <흰>에서 배내옷을 읽었다. 여기 저기 밑줄을 그은 것을 옮겨본다.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였다고 했다. 여덟 잘 만의 조산이라, 몸이 아주 작았지만 눈코입이 또렷하고 예뻣대고 했다. 까만 눈을 뜨고 어머니의 얼굴 쪽을 바라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어머니는 시골 초등학교 소사로 부임한 아버지와 함께 외딴 사택에서 살았다. (중략). 마침내 혼자 아기를 낳았다. 혼자 탯줄을 잘랐다. 피 묻는 조그만 몸에다 방금 만든 배내옷을 입혔다. 죽지마라 제발. 가느다란 소리로 우는 손바닥만 한 아기를 안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처음엔 꼭 감겨있던 아기의 눈꺼풀이, 한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방긋 열렸다. 그 까만 눈에 눈을 맞추며 다시 중얼거렸다. 제발 죽지 마. 한 시간쯤 더 흘러 아기는 죽었다. 죽은 아기를 가슴에 품고 모로 누워 그 몸이 점점 싸늘해지는 걸 견뎠다.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한 강, 흰, pp.20-21.
2. “가이사랴 감옥에 갇힌 바울(24-27절)”과 “가이사/카이사에게 상소한 바울(25:1-12)”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3심제를 택하는 것 같은데 이웃 나라 공산국가인 중국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함부로 사람의 목숨과 재산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재판의 첫 단계인 1심을 맡은 지방법원의 역할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사건의 전말/顚末을 가장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때문입니다. 2심인 고등법원이나 3심인 대법원에서는 1심의 심리나 내용을 최대한 존중해서 그를 넘어서지 않는 한 뒤집혀질 일이란 생기지 않는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근 어느 분의 말씀에 따르면 지방법원에서 심리를 맡은 분이 명망이 높아서 대법관 후보에까지 오른 모양입니다. 그 분이 맡은 사건이 결론을 내자, 항소를 포기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급심인 1심에서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게 된다면, 항소나 상고와 같은 낭비는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총독이라는 벨릭스는 유대 지도자들이 고발한 피고인 바울을 두고 장사를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늘어놓는 예수쟁이 설교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유대인들을 저울질 하며 돈 거래를 하려했던 것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에 들어갔을 때, 감리교 감독 이환신 목사님께서 신학생들 채풀에 오셔서 설교를 하셨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목사나 신부는 두 가지만 조심하면 웬만큼 목회를 할 수 있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첫째는 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여자라고 했습니다. 청렴결백한 목회자가 될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을 신학생들에게 돈 조심, 여자 조심을 말씀하셨으니, 얼마나 흥미진진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도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시는 목사님은 우리들에게 설교할 때는 교우들을 바라보지 말고, 예배당 맨 끝의 천장과 벽면 그 모서리를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여인의 눈을 보면 마귀가 왔다 갔다 하고, 가슴을 보면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명 설교(?)였습니다. 벌써 50년도 훨씬 넘은 옛날 옛적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그 설교를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저는 목회상의 치명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돈 조심, 여자 조심. 이런 것들은 신앙생활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본질적인 모든 것들을 무너트릴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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