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53(2024. 10. 16. 수요일).

시편 88:14-15.

찬송 50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98<눈먼 자들의 도시>로 포르투갈에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사라마구/Jose Saramago 는 예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발표했던 <예수의 제2복음>으로 인해, 정부와 사회로부터 박해를 받아 조국 포르투갈을 떠나야 했다. ‘교회를 위협하는 제목과 내용을 지닌 작품이라는 가톨릭교회와 보수층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은 때문이었다.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강의하는 옥스퍼드대학의 석좌교수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 발표되었을 때, 한국의 강단을 비롯해서 많은 반대주장이 있었다. 기독교회가 허약한 이유가 밝혀진 셈이다. 이런 현상에 또 다른 좋은 책(?)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도널드 맥컬로우의 <내가 만든 하나님/The Trivialization of God>을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은 수많은 반대와 도전 속에서만 가치를 가진다 하겠다. 우리 한국교회가 자기방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 이유이기도 하다.

 

2. “벨릭스 총독에게 호송된 바울(23-35)”을 읽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점은 로마 식민통치자들은 유대교 지도자들과 보이지 않는 갈등관계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의 음모에 대해서 바울을 음으로 양으로 보호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파견대장 루시아(리시아)는 두 명의 백부장을 불러 보병 200명과 기병 70명 그리고 창병 200명을 준비시켜 총독 벨릭스에게 편지를 써서 바울을 호송하게 합니다. 그의 편지에서 로마 당국자들이 바울과 유대인 지도자들의 관계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바울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유대인들에게 살해당할 뻔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임을 알자 군대를 통해 그를 구해냈는데, 무슨 이유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아보려고 유대인의 의회에 가 보았는데, 내용은 유대인들의 율법문제로 고발당하였을 뿐,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될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를 암살하려는 정보를 입수하고 각하께 이 사람을 보내니 각하께 직접 고발하도록 조치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병들로 하여금 바울을 호소해서 벨릭스 총독에게 편지와 함께 넘겨주었습니다. 총독은 바울이 길리기아 출신임을 알고, 고발자들이 온 다음에 심문하겠다고 말한 후 바울을 헤롯의 관저에 있는 옥에 가두어 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해관계에 민감할 뿐 아니라, 손익계산에 따라서 살아가는 경향입니다. 어느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진정한 친구란 아무런 부담 없이 교제하는 관계로, 만남 그 자체를 좋아하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순간 편하게 만날 수 없는 친구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관계에서나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관계라고 판단되는 순간에 순수한 친구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에 지배자로 주둔하고 있는 로마 장교의 입장과, 속으로는 로마 지배자들을 증오하지만 겉으로는 아부와 굴종을 마다하지 않는 유대지도자들의 입장, 그리고 신흥 종교로 많은 민중/혹은 천민에 해당되는 암하레츠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는 이런 관계의 룰이 작용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마 통치자들이나 유대 지도자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에게 무엇이 유리하고 도움이 되는가에 따라서 속과 겉이 다른 처세를 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들과는 다른 처세술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로마 당국자나 유대 지도자들은 포교활동이나 경제적 사회적 유불리를 떠나서, 죄와 죽음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인생이라는 인식 말입니다. 비록 한쪽은 평화로운 가운데 지배자의 삶을 최상의 목표로 살기를 원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피지배자로써의 모욕과 부자유 그리고 굴종에 항거하거 해야 하는 목적이 뚜렷한 삶을 살고 있는 사이에서, 그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진 예수의 제자들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삶을 향해서 살아갈 이유를 전해야 했으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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