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51호(2024. 10. 14. 월요일).
시편 88:8-10.
찬송 3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한 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을,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각각 배경으로 하는데, 국가 기관의 개입을 기정사실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가 이 두 사건을 꿰뚫어보고 있는 현실이니, 더 이상의 정치 논쟁은 막을 내렸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문학의 힘이 총과 칼의 힘보다 더 막강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 같습니다. 암울한 현실적인 장벽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견디고 참고 버티고 다시 일어나는 그래서 김수영의 시 <풀>의 중간 연이 돋보입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2. “바울이 공회 앞에서 증언하다(30-23:11)”을 읽었습니다. 아산 집을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책을 선물하곤 했습니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축복이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 동창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요새 누가 책을 읽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동안 책을 사러 책방에 가는 걸 멈추었습니다. 이 책은 음악을 하는 친구가 읽으면 좋겠구나. 이 책은 하릴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그 친구에게 어울리겠어. 했었는데 말입니다. 책 속에 담긴 글들은 제가 하고 싶은 말도 있고, 제가 들어야 할 말도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싶은 그런 글들도 들어 있습니다. 어쩌면 특별한 부담감 없이 마음의 양식(?) 정도로 생각하고 읽을 수 있는 글들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저는 빈티지 샵을 즐겨 찾습니다. 옷도 책도 심지어 강아지 간식도 그런 집을 선호합니다. 책은 할인율이 아주 높습니다. 대부분 새것입니다. 겉표지의 책값이 여러 번 붙였던 가격표를 떼어 내는 일이 조금 번거롭지만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책의 내용이 살아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천부장이 유대인들의 바울에 대한 소란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유대인의 의회를 소집하고, 그 의회 앞에서 바울이 변론할 기회를 준 내용입니다. 바울은 다음 두 가지를 공개 변론하였는데, 첫째는 자신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인 아나니아가 바울의 입을 때리라고 해서 때리자, 바울은 그를 위선자라고 대꾸합니다. 이유는 율법에 따라 재판하지 않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바리세파 사람인 것을 밝히며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다고 진술한 것입니다. 그러자 의회원들 가운데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 중에는 천국도 부활도 부정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리세파 사람들은 바울을 두둔하였고, 잘못이 없다 외칩니다. 천부장은 바울에게 테러를 할까 두려워 바울을 로마 병영 안으로 피신시키는 것으로 소요사태를 일단락 짓습니다.
양심에 따른다는 말과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다는 바울의 증언은 바리세파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들렸지만, 사두개파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으로 들렸던 것입니다. 물론 유대인이든 크리스천이든 그들이 가진 신앙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객관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동안 많은 미션 중고등학교 성경교사들이 기독교 신앙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왔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시도였습니다. 신앙이란 그 내용과 그 틀에 있어서 객관적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막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사고를 시작한 젊은이들에게 이 점을 솔직하게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어갈 무렵에는 인간의 자기정체성에 무게를 두게 되면서, 신앙이 주관적인 것임을 알게 되면서 속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양심도 그렇고 부활도 주관적으로 밖에는 용납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정의했던 것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1세기 말의 유대인은 사두개인, 바리세인, 열심당파, 에세네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유대인 지도자들 중 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장과 지식인들 대부분은 사두개파로, 그들은 비교적 현실에 만족을 하는 이들로 천국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에 반해서 바리세파 사람들은 율법 준수를 최우선시하며,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과 죽음 후에 부활이 올 것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듯 같은 성경을 경전으로 믿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신앙의 주관성과 객관성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현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틈바구니에서 천부장의 도움을 받아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불경하다고 비난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누구에게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은총이었습니다(엡 2:8).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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