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56호(2024. 10. 19. 토요일).
시편 89:3-4.
찬송 58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역사에 대한 서술이 있다. “역사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인간이 살아 온 과정에서 일어난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모든 사실을 다 알 수는 없다. 수많은 사실 중 역사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기록한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즉,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실 그 자체’이자,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어 기록된 사실’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과거의 사실에 대한 기록은 역사가의 해석을 담고 있다. 따라서 랑케는 역사가의 주관을 철저히 배제한 객관적 사실만을 기록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역사학자인 카(E. H. Carr)는 과거의 사실을 보는 역사가의 관점과 사회 변화에 따라 역사가 달리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카(E. H. Carr)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말하였다.”
고등학교 <세계사>(지학사) 14쪽
2. “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베르니게 앞에 서다(13-27절)”을 읽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의 시초에 대해 서는 대개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Those who tell the stories rule society.”라는 말이나 로마의 속담을 들곤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이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근대 이후, 특히 현대의 일로, 근대 회의주의(懷疑主義)의 정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단재 신채호의 말로 널리 알려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많은 역사학도들에 의해서 근거가 없는 말로 알려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역사에 대한 비장한 명문장들의 출처를 밝히지 못했다고 해서, 그 말들의 가치나 의미가 훼손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왜곡되기 쉽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의 재판에 아그립바 2세/헤롯과 그의 아내 버니게/베르니게가 신임 로마총독 베스도의 취임 축하 자리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유대인의 왕이란 허수아비 군주 헤롯/아그립바는 나라를 뺏긴 현실에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지 못하고, 로마 식민통치자에게 아부하기에 바빴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바울의 얘기는 매우 자연스럽게 나왔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베스도 총독은 취임 초기에 이미 유대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 의해서 고소를 받았고 바울을 예루살렘 자신들의 공의회에 넘겨줄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베스도는 법치와 합리적 판단을 한다는 로마 정치지도 이념에 따라 공정성을 최대한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조만간 자신도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그때 논의하자고 말입니다.
로마의 병영지 가이사랴를 방문한 아그립바와 그의 아내 버니게(이 여인은 남자 이력이 화려함)는 베스도 총독의 바울 재판에 관한 얘기를 꺼냅니다. 유대인을 대표하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고소를 듣고, 총독 자신이 전말/顚末을 조사해 보니, 바울에게는 악행의 혐의가 없을 뿐 아니라, 고소자들이 그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밝힙니다. 기껏해야 예수라는 젊은이가 죽었는데,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베스도는 유대 사회 공동체를 혼란에 빠트릴 그런 반사회적 반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종교문제에 국한 되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런데 총독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이 문제를 심리하는 것에 대해서 물어보니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 로마 황제의 판결을 받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바울을 로마로 보낼 때까지 가이사랴에 구금해 두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바울을 불러 그들 앞에 세우고, 조금 전에 아그립바 왕에게 했던 말로 그가 죽임을 당할 죄를 지은 일이 없고, 로마 황제의 재판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장면을 목격하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자신들에게 힘이 없음을 땅을 치고 한탄했을 것입니다. 역사는 힘을 가진 자에 의해서 쓰인다는 말을 재삼재사 확인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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