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59(2024. 10. 22. 화요일).

시편 89:11-13.

찬송 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스위스 출신의 영국작가 알랭 드 보통은 걱정없는 인생을 바라지 말고, 걱정에 물들지 않는 연습을 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걱정이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합니다. 걱정은 새 아침을 기운차게 맞이할 과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무엘과 다윗처럼 하나님을 예경/禮敬하는 자세가 필수라 할 것입니다.

 

2. “바울이 아그립바 왕애게 전도하다(24-32)”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다(1-8)”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늙을수록 느는 것은 잔소리 뿐이다.” 는 옛 말처럼, 자신의 설교는 잘못하면서 남의 설교에서는 흠을 잘 찾아내는 것 같습니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설교는 왜 하는 것일까? 열심히 성경만 잃고 기도에 열심하면 되지 하는 생각말입니다. 설교를 흔히 성경말씀을 변화하는 시대 시대 속에서 해석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게토/ghetto 안에 생각이나 행동이 제한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것이 과연 설교일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설교학을 배울 때는 성경말씀을 삶의 자리에서 해석하는 것이라고 배웁니다. Text in Context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록된 성경말씀도 그 시대적 삶의 자리에서 선포된 것이므로 그 삶의 자리를 이해하지 않고는 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말씀을 전혀 새로운 시대인 현대인의 삶의 자리에서 무슨 의미여야 하는지를 선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설교자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일관한다면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소위 역사 의식이라는 것이 전혀 반영될 수가 없는 설교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성경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말씀으로 환생하지 못한 채, 설교자에 따라서 이현령비현령 하고 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동생같은 목사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역사 의식을 가지면 설교가 살아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 후부터 입을 꾹 닫고 있습니다. 이른바 순수예술을 생명이 길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최대한 중립적인 용어만 골라 쓸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예술은 적어도 그 특정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써는 매우 비겁한 일이며, 무책임한 일이라 아닐할 수 없습니다. 동시대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말씀 자체도 진공상태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배경을 한 아름 안고 있으니 말입니다.

    바울은 중립자 연/하는 아그립바 2세 헤롯 왕에게, “예언자들을 믿는가?”라는 질문으로 예수교 신앙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눈치챈 아그립바는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 하느냐?”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전하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저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고 밝힙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총독 베스도와 헤롯 아그립바 그의 아내 버니게 그리고 모든 정치 지도자들을 자리를 뜨면서, 바울은 사형을 당하거나 옥에 갇힐 죄를 짓지 않았는데,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를 했으니, 풀어줄 수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며 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과연 바울의 상소가 자신과 당시의 기독교 세계에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면 해가 되었을까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년 동안 중국 선교에 동참하고 있던 몇 사람은, 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신학생 양성학교를 만들기를 꿈꾸고, 이를 위한 교수진과 재정을 충당하는 문제를 의논하였습니다. 재정은 3사람이 균등하게 출연/出捐하기로 하였고, 교사/校舍와 학생 모집 등은 현지에 계시는 두 분 조선족 목사님과 한국인 선교사님이 책임을 지고, 저는 가르치는 교수진과 커리큘럼 등을 책임지기로 하고, <학성 복음신학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학생들도 여러 곳에서 모집해 두었고, 첫 입학식과 첫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요? 현지에 계시는 한국인 목사님이 신입생들에게 맞춤 옷을 준비해서 입히고, 매일 아침 신학교가 있는 명성촌 주위를 군인들처럼 열을 맞추어 찬송을 부르며 구보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중국 공안에게 우리의 존재를 공개해 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그 첫날 입학식을 마치고 첫 강의를 시작하는 바로 그 시간에 공안 6명이 들이닥친 것입니다. 그들은 외국인인 제게만 심문을 하지 않고, 다른 6명을 붙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권고를 받아들여 내몽고 지역으로 밤 기차를 타고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원대한 계획이 일순간에 수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밤새도록 달리는 기차 안에서 저는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학성 복음신학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른 새벽에 도착한 러시아 접경도시 만쥬리에서, 교회당을 구입했으나 잔금을 치르지 못하고 있는 한 조선족 교회에게 잔금 3천위안을 전달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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