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는 여러 목적 가운데 하나는 구원을 받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원이란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인데, 사후 세계에서 영생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온갖 굴레와 연약함에서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것도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원의 길이 신앙생활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은 희망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땅에서건 하늘에서건 구원받은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이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까닭은 <좁은 문>인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멸망으로 향하는 <넓은 문>을 걸어가고 있다고 말씀합니다(마7:13). 여기에 어리석은 인간을 보게 됩니다. 마음으로는 생명의 길인 <좁은문>을 생각하고 결심하면서도, 실제 삶은 멸망의 길인 <넓은 문>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구원만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대동소이합니다. 제대로 된 삶을 살고싶어 하면서도 실제의 삶은 빗나간 길,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근면 성실하게 살겠다고 다짐만 할 뿐, 무절제하게 사는 사람이라거나, 새벽 일찍 일어나 정해진 계획대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학생이 여전히 늦잠을 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길을 몰라서 입니까? 아니면 너무도 잘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생활입니까? 구원의 길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좁은 문>으로 들어서는 일이며, 끝까지 <좁은 문>을 통과하는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더 이상 <좁은 문>을 바라만 보지 말고, 그 문을 들어서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좁은 문>은 제한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본문을 읽거나 설교를 들었을 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나는 <좁은 문>만 들어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좁은 문>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를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넓은 문>과 대조되는 <좁은 문>은 어떤 것입니까?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가톨릭 배경을 가지고 있는 소설인데, 완벽한 삶의 길이 어렵다는 해답을 내놓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문>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넓은 문>이 사람의 지혜와 노력을 추구하는 길이라고 하면, <좁은 문>은 이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르는 길이라고 말입니다. 역사 이래로 지금까지 사람들은 <넓은 문>을 걸어갔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치와 능력을 인정하고 발전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말합니다. 그 결과 과학적인 발전과 문명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넓은 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고, 인기리에 계승되고 있지만, 참된 구원을 가져다 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인간은 죄와 죽음에 잡혀있는 죄인인 때문이며, 누구도 제 힘으로는 이 죄의 사슬에서 자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걸어가는 <좁은 문> 뿐입니다. 예수 안에서만 <좁은 문>을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좁은 문>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남들과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이 점에서 명백한 지침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생명이 하나님의 은총이듯, 그 생명을 살리는 것 또한 하나님의 구원행동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은 보통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감화 감동시키지 않은 사람은 분명 낯선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지혜와 힘, 그리고 노력을 다 쏟아 부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벨탑을 쌓는 일이며, 시지프스의 돌 굴리기와 같은 일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고, <좁은 문>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밖에 서 있는 일은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일입니다.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고, 생명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죄와 죽음 아래 사는 인간은 무력할 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희망이 있습니다. <좁은 문>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동을 주목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은총과 행동을 주목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향하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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