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4:5-8.
찬송  473장.

   고통과 시련은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도와줍니다. 사순절에는 이런 내용의 말씀을 자주 묵상하게 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며, 나는 과연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런 고민을 품고 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성공적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공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 참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미지수 입니다. 남보다 높은 위치에 오르고, 더 많은 힘을 쓰고 넉넉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런 성공에 대한 인식은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100여건의 법률이 단 며칠 사이에 국회에서 통과되었는데, 가끔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 법률들 가운데는 호주제 폐지에 관한 법률과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입법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앞으로 격렬한 몸싸움이 예상됩니다. 남자대 여자와의 싸움이고, 서울과 충청지역의 싸움입니다. 이 모든 문제들의 바탕에는 힘이 깔려 있습니다. 기득권자들의 힘과 새롭게 살아보자는 사람들의 힘이 부딪히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힘의 대결에서 이기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로 힘을 쓰려고 합니다. 성공한 나라의 면모를 과시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성공한 삶의 모습입니까?

성공이란 낮아지는 것이고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세베대의 두 아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이런 높아지는 성공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공에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밟고 올라가던지, 아니면 이용하던지, 그도 아니면 모함을 해서라도 넘어트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성공은 모두가 웃고 기뻐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어느 한 쪽에서는 슬픔과 고통을 겪도록 하는 잘못된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낮아지고 섬기는 성공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주님은 세상의 가치와 다른 천국의 가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천국의 삶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천국의 가치관을 따르고 익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을 찾아오심으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예수님 보다 더 성공할 수 없도록 말입니다. 

누구나 성공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인 같은 드라마라고 해서 <부모님 전상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한 두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보통의 드라마에서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엑스트라가 되곤 했습니다. 우리들 인생도 누구도 예외 없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며, 그런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이 예수님이 제시하신 성공의 길입니다. 낮아지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섬기는 일, 여기에 참여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공적인 삶을 살수 있다고 말입니다. 높아지는 것보다 낮아지는 것이 훨씬 쉬운 자세입니다. 권모술수를 써서 남을 밀쳐낼 필요도, 더 많이 갖기 위해서, 더 많이 알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경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낮아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알면 안다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합니다. 주어진 기회와 재능들을 감사하며 분수에 맞도록 관리합니다. 잘하는 일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도울 일이 있으면 정성껏 도와줍니다.  낮아지는 삶, 그것은 천국 백성들이 배우고 삶에 적용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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