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4:18-23. 찬송 358장.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품위 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반드시 정신적 만족을 포함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본문의 모델이 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모습에 대해서 예수님은 전혀 다른 생각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 아름답고 향기 풍기는 사람이 되려면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입니다. 높은 자리, 존경받는 호칭, 그 자체가 향기로운 삶이 아닙니다. 방폐장 유치가 경주로 결정되었습니다. 한 때는 죽음과 재앙을 가져온다고 기를 쓰고 반대하던 문제가, 네 도시의 열띤 경합 끝에 결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핵폐기물을 서로 모셔두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습니다. 위험부담을 안고 있지만, 당장 엄청난 보상비와 부가 수입 앞에서는 너도 나도 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시대는 배금사상이 최상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땅에서는 돈의 위력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높은 자리, 존경받는 호칭까지도 다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돈입니다. 물론 물질의 힘은 대단합니다. 루터는 돈을 중성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잘 사용하면 약이 되나,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돈을 법니까? 향기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왜 높아지려고 합니까? 더 많은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입니다. 왜 의사가 되려느냐? 불쌍한 아이들을 고쳐주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낮은 자리, 섬기는 일이, 참으로 우아한 삶입니다(11-12절). 9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80세까지 독신 간호사로 섬기는 삶을 살다가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윤정숙할머니. 꼭 60년간을 병든 사람들 곁에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15년 마지막 시간은 눈이 어둡고 기력이 쇠하여 더 이상 섬길 수 없게 되어서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몇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면서 아름답고 향기 나는 모델을 지켜보았습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삶은 굳이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오히려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누구도 경쟁하려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저는 사회적인 명사가 되어야만 이 우아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어디서든 낮은 자리를 자원하고, 섬기는 일을 자원하면, 누구든 가능한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낮은 자리로, 섬기는 일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낮아지고, 섬김을 실천하기만 하면 됩니다. 말씀을 따라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향기로운 삶입니다. 물론 낮은 자리나, 섬기는 일은 감상적일 수 있습니다.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기에 계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보증이 필요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명령하시니까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입니다. 정통 유대인은 옷단에 술을 매달았는데 계명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이마에 경찰을 붙였는데 출애굽을 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문에 메주자를 달았는데 쉐마교리를 기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데 좋은 시각 교육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게 되었습니다. 책상 앞에 인생 목표를 크게 써두는 것은 필요합니다. 공부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오히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킬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따라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그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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