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1676호.
시편  86:6-10.
찬송  239. 236, 장

기독교 신앙에는 화육(Incarnation)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정녀의 몸을 빌어 세상에 오셨다는 교리입니다. 바로 그 당사자인 마리아의 고백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성령께서 자신을 통해 생명을 잉태케 하시겠다고 하셨을 때, 말씀의 능력을 인정하고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37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하나님의 실체가 말씀이라는 사실을 입으로는 줄줄 외우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히 4:12)신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말씀이시며, 당신이 하신 말씀대로 반드시 행동하시리라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한 여인이었고, 존경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녀처럼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아브라함이나 모세보다도, 엘리야나 바울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한 유일한 인간이었는지 모릅니다.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동의하였습니다(38절).
오늘 본문에서 이 대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동의하에서 일하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한국 과학 수준은 우등생인데, 정치 수준은 낙제생이라는 말을 합니다. 서로 다른 주장이 공존하고 타협을 통해서 협력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영원한 평행선을 달리기 때문입니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이 아니라면, 문제의 핵심을 공유하고 최선의 해답을 찾으려 했다면, 얼마든지 객관적인 의견수렴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차이는 한 치도 좁히지 못하고 날치기식으로 법령을 통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마음대로 누구에게나 생명의 씨앗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서 찾을 수없는 동의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차별성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마리아의 참여로 이룩되는 위대한 사건인 때문입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더할 수 없는 신앙입니다.

마리아처럼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고백하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우리들 신앙에서 가장 큰 취약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말씀> 이라는 등식은 성경적 진리입니다(요 1:1). 하나님을 말씀 속에서 만나야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받고 싶어 하는 점입니다.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말씀 속에 마땅히 행할 삶의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씀을 소홀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했다고 고백(시 19:10)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목표가 빗나가 있는 점입니다. 최상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나 정말 이상스럽게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에는 무관심하고, 대신 자신들의 야망이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먹고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너희 천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뜻을 구하라.”(마 6:31-33). 주님의 말씀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