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2225(2007. 6. 20. 수요일).

시편 시 102:1-5.

찬송 16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고 그저 그렇기만 했던 사람, 끝까지 그럴 줄만 알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여자나 남자와 결혼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사람이 너무나 괜찮아 보입니다. 그러면서 왜 진작 그가 그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는지를 알아보지 못했나? 가슴을 치지요. 별로 사고 싶은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옆 사람이 집어 든 물건이 마지막 딱 한 개 남은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 갑자기 그 물건이 꼭 사고 싶어지는 것, 그런걸 마케팅 용어로는 <마감 효과>라고 한다고 하지요. 마감이 된다는 그게 끝이라는 심리적인 불안감이 갑자기 그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겁니다. 사라져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무엇이든 그렇게 괜한 불안과 두려움을 주는 거겠지요.

   하지만 그런 불안과 두려움에는 사실 심술이나 질투가 없지 않습니다. 내가 하찮게 여긴 것은 끝까지 하찮은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심술과, 그런 존재를 값지게 만든 것에 대한 질투가 없지 않은 거지요. 하지만 모든 존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 기준이나 척도대로만 존재 할리 있나요? 내 기준이 어떠했든 마감될 것은 마감되고, 사라질 것은 사라지는 거겠지요. 이제 5월이라는 시간의 마감을 앞둔 날입니다. 이제서야 이 5월이 이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었나? 허둥대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5월이 아름답고 현명했던 게 아닐까? 위안 삼아 봅니다<KBS FM 1, FM가정음악, 2007530일 방송>

 

2. 본문에서 인자의 때라는 말씀은 세상 끝날을 의미하는데, 바로 그 때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말에 대해서 가끔씩 설교를 듣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말 얘기를 들을 때 혼동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른바 종말론에는 세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곧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임박한 종말론과, 지금 어떤 사람들의 마음에는 주님이 계시다는 실현된 종말론과, 그리고 언제일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먼 미래에 있을 것이라는 미래적 종말론이 그것들입니다. 모두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 종말론을 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 역시 어떤 때는 임박한 종말관이라는 이해 속에서, 또 어떤 때는 미래적인 종말관의 이해 속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성경을 읽는 이들이 헛갈린다고 합니다. 어느 것이 진짜냐고 말입니다. 저는 항상 그렇게 말합니다. 세 가지 종말론 모두다 다 정답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왜 세 가지로 말씀하실까요? 그것은 종말론을 맞게 될 두 가지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종말을 맞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온 세상 전부가 종말을 맞게 되는 경우입니다. 개인 개인으로 종말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임박한 종말관과 실현된 종말관이 그런 때입니다. 한 개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적어도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종말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매 순간이 종말인 듯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천국을 경험하는 때문에 실현된 종말관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우주적인 종말은 언제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의 계획 속에 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인자의 때는 이런 의미에서 우주적인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주적인 파국의 날은 반드시 징조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그 예로 노아의 때와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의 때를 들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는 온 세상이 세상살이에만 취해서 살던 때라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무슨 잘못일 수가 없는데도, 홍수로 온 세상을 멸망시킨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없는 인생살이는 패역하고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롯이 살던 고모라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지었을 뿐 아니라, 음란과 타락으로 극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 땅에는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다 태우는 벌이 내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교회의 지붕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높이 달려 있지만, 과연 교회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겉은 십자가로 꾸며져 있는데, 속에서는 수도 없이 무당들이 하듯 복이나 달라고 외치는가하면, 온갖 불신과 미움과 다툼이 세상과 하나도 진배없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현혹하게 하는 교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믿는 자를 과연 몇이나 볼 수 있겠느냐?”는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버드의 지성을 가난하고 힘든 이웃들에게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묻고 있는 빌 게이츠의 한 마디가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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