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2223(2007. 6. 18. 월요일).

시편 시 101:1-4.

찬송 37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여행가이기도 한데요. 서양 문학사에서 5대 자서전으로 꼽히는 [안데르센 자서전]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여행기이기도 합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180542일 덴마크의 오덴스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자신의 집을 소유한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이었지만, 집안에는 늘 먹을 것이 없어서, 어머니가 길거리에 나가서 구걸을 해야 했습니다. 안데르센은 부잣집에서 버린 관을 개조한 요람에서 자랍니다. 그래선지 그의 동화는 세상을 아픔답게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의 물거품도 그가 여행을 하면서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동화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이유, 그건 아마 인간에 대한 신뢰감과 세상을 향한 안데르센의 열린 마음 때문 일 텐데요.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지닌 생을 회고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과 솔직함으로 대해 주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배신당한 적도 거의 없었다. 나는 왕자에서부터 가난한 농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고귀한 인간의 맥박 소리를 들었다.”

   안데르센은 [인어공주]를 발표하면서부터, 작가로써 명성을 얻었는데요. 그 뒤로 매년 아이들은 안데르센의 동화를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유명 작가가 된 이후에도, 안데르센은 떠돌아다닙니다. 연고자들은 안데르센이 끊임없이 유랑하는 이유로, 가난해서 배우지 못했다는 열등감, 그리고 덴마크의 오랑우탄이라고 불리는 외모 콤플렉스가 더해져서, 그런 것이라고도 하는데요. 그런 안데르센도 머물고 싶었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예느 린드,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였데요. 동화 [나이팅게일]은 그녀에게 바친 작품이었습니다. 10년 동안 린드를 짝 사랑한 안데르센. 어느 날, 린드는 안데르센을 초대해서 오직 그만을 위해서 노래를 불러줍니다. 그녀의 초대를 받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안데르센은, 그 노래를 듣고 무릎을 꿇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지요. 그녀는 안데르센의 손을 잡고 이제 울지 마세요. 나의 왕자님.” 이라고 달래 주었지만, 그것이 단 둘이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자리였습니다. 그녀는 같이 공연을 하던 피아니스트와 결혼해서 그의 곁을 떠나고 맙니다. 린드를 잃은 안데르센은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고 187584일 친구였던 멜키오르 부인의 집에서 70년에 걸친 아름다운 여행을 끝냈습니다<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527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용서하라는 말씀과(1-4),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씀(5-6), 그리고 종의 자세에 관한 말씀(7-10)이 있습니다. 셋을 다 묵상하기에는 힘이 듭니다. 저는 세 번째 말씀 종의 자세에 관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래 전에 저희 교단의 한 건물을 짓고 있을 태였습니다. 공사 감독 일을 하시는 저희 교회 장로님을 격려할 겸해서 공사장 일꾼들에게 돼지 머릿고기와 떡을 좀 해 가지고 여선교회원들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기도 중에 그 곳에서 일하는 분들을 지칭해서 이 종들에게 은총을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무심코 늘 하던 습관대로 드린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자마자 장로님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사과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하신 종이라는 말씀은 기독교인들이 자기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말이니까,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좋은 의미로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는 진종일 밭에서 혹은 양을 치던 종이 등장합니다. 그는 매우 지친 몸이었을 것인데도 집에 돌아와서 환대를 받기 보다는 또 다시 주인을 위해서 음식을 장만하는 등 주인 식구들이 저녁 식사를 마칠 때가지 시중을 들지만, 칭찬은 고사하고 주인 식구들이 다 먹은 후에 밥을 먹으라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요사이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이처럼 하늘과 땅처럼 엄격하게 구별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물론 그 당시의 사회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이 말씀 속에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을 일깨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시대는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사람마다 자신의 임무와 역할이 있어서 그것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전보다는 훨씬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역할분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딴 세상을 살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겠지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직무 명세서(job description)를 처음부터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구두로가 아니라 문서로 말이지요. 네 직무를 다하라 십니다.

 

3. 저는 오늘부터 닷새 동안 일산에서 열리는 베델강습회에 참가합니다. 거기에서 오랜 묵상식구이신 미국에서 백인교회를 맡아 수고하신 함 명신 목사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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