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2224(2007. 6. 19. 화요일).

시편 시 101:5-8.

찬송 20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막의 낙타는 물 냄새를 맡고 집을 찾는다.” 이 낙타와 물 냄새 이야기는 몽골의 고비 사막에 사는 주민들의 말입니다. 그 황량한 사막에도 낙타가 길을 찾는 오아시스가 있듯이, 물이 있는 곳이 바로 생명이 있는 곳이지요. 우주에 떠다니고 있는 다른 행성의 생명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바로 물이라고 합니다. 그 행성에 물이 있다면 생명체가 살 확률이 높다고 하고요. 수소와 산소의 화합물인 물, 자연에서 얼음이나 눈과 같은 고체 상태, 물과 같은 액체 상태, 또 수증기와 같은 기체상태, 이렇게 세 가지로 존재 하는데요. 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자연물 가운데 하나이고, 또 모든 화합물 가운데 기본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물은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위대한 모성으로 비유되는데요.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에모토 마사로는, 겨울에 내리는 눈의 결정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것에 착안해서, 물을 얼려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는데요. 사랑, 감사라는 글을 보여준 물에서는 아름다운 육각형의 결정이 나타났고, 악마라는 글을 보여준 물은 중앙의 시커먼 부분이 주변을 공격하는 형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물은 음악에도 반응을 했다고 하는데요. 쇼팽의 빗방울을 들려주자, 정말 빗방울처럼 생긴 결정이 나타났고, 이별의 곡을 들려주자, 결정들이 잘게 쪼개지면서 서로가 이별하는 형태를 취했다고 하네요. 정말 신기하지요?

   물 전문가들은 물질과 감정, 그리고 생각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파동이 물에 영향을 주어서 그런 구조를 결정한다고 설명합니다. 또 물은 모든 정보를 기억하고 있어서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유구한 지구의 역사를 간직 하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하는데요. 물 걱정을 별로 안하고 사는 사람들은 가끔 물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지요. 사실 배고픔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목마름이라고 합니다. 물이 귀한 아프리카에서는 물 한 모금이 보석보다도 더 소중하게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는 우물가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물을 받다가, 우물이 부족해서 뒤 쪽에서 사람들에게까지 물이 돌아가지 않을 때, 그들은 자신의 물을 서로 나누어서 가져간다고 합니다. 그 때 그 물의 결정을 사진으로 찍으면 어떨까요? 참 아름답겠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529일 방송>

 

2. 사마리아와 유대지방에는 중립지대(DMZ)가 있었던 모양입니다(11-12). 물론 우리처럼 철조망을 친 경계선은 아니었지만요. 그들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원수보다 더 독한 마음으로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성별의 규약을 깨트린 때문이라고 유대인들이 비난을 한 데서 생긴 악연입니다. 때문에 서로 상종하기를 꺼려했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두 지역 사이에는 완충지대가 생겼고, 거기에 문둥병자들이 움막을 짓고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가끔은 이런 어리석고 바보 같은 인간들의 갈등과 대립이 순 작용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문둥병자들이 마음 편히 지낼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완충지대, 사실은 폭발하기 직전의 분노가 이글거리는 평온을 가장한 싸움터에서, 예수님은 열 명의 문둥병자들을 만나셨고, 그들에게 말씀 한 마디로 성한 사람으로 바꿔주셨습니다. 문둥병자인지 여부나, 문둥병자에서 건강한 사람이 되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일을 제사장들이 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제사장에게 찾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현실에 들어오시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바라보는 일이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일 역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침을 받은 열 문둥병자 가운데 오직 한 사람, 그것도 사람구실 하지 못한다고 항상 질책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 출신 문둥병자만이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15-16). 몸 뿐 아니라, 마음고생도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컸을 이 사마리아출신 문둥병자를 생각해 봅니다. 그는 슬프게도 문둥병자들 세계에서까지도 따돌림을 당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도 더 큰 아픔을 속으로 삼키며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그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주님의 따뜻한 눈길과 부드러운 말씀,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 찬 주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것 말입니다. 그리고 다가설 때 거부하지 않을 신뢰감이 자신의 마음에 피어오르고 있음을 말입니다. 지금도 치열한 인생의 싸움터에는 중립지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남모르게 눈물짓는 이웃들이 있을 것입니다. 누가 그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시려는지요.

 

3. 우리 묵상식구이신 김태성 목사님의 부친께서 지난 12일 하나님께로 가셨습니다. 지난 3월 저의 계절학기 강좌에도 오셔서 저를 격려해 주셨는데 말입니다. 인자하신 얼굴이 눈에 선히 떠오릅니다. 슬픔 중에 계실 김 목사님께 하나님의 위로가 내리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