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469(2010. 11. 15. 월요일).

시편 시 11:1-4.

찬송 4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친구라고 하면 우선은 초중 고등학교 시절 같은, 격의 없던 시절에 만난 사람들을 먼저 떠올립니다. 또 나이 들어서 친구사귀기란 정말 어렵다 라고들 말하지요. 그런 현상의 인연에는 어느 시기를 넘기면, 서로 친구먹자 이렇게 훌쩍 다가서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서경식은 그의 산문집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그 이유를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았지요. “나는 1951년 태생으로, 문순근과 거의 같은 세대다. 같은 시대에 같은 교토의 거리에서, 나와 같은 재일 조선인인 문순근이라는 젊은이가 병마와 싸워가며 예술을 향한 험난한 길을 기어가듯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만나지 못했고, 설령 만났다 해도, 재일 조선인 2세 특유의 갈라진 유리잔 거스러미 같이 거친 자의식으로 가득 찼던 두 사람이 친해지는 일이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단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 때 서로 만날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을, 이런 헛된 기대대신에, 그 때 만났다고 해도 서로 친해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못을 박습니다. 그 이유로 그는 가친 자의식을 들고 있는데요. 하지만 두 사람의 곤고한 형편만이 거친 자의식의 차단벽으로 작용했을 거라 여겨지지는 않지요. 어쩌면 자의식은 우리 마음위에 새겨진 세월의 빗질 자국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물론 아주 어린 시절에도 놀이터에서 처음으로 말을 트고 함께 어울릴 때는, 성격차이는 있다고 해도 누구든 어느 정도쯤은 쭛뼜거리곤 하지요.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을 품고 조심스레 다가섭니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는 아직 자의식은 찾아볼 수 없지요. 그런데 어른이 되면 좀 달라집니다. 받아들여질까 거절당할까에 대한 굵고 단순한 두려움 외에도, 나의 위치 그리고 성별 나의 행동이 어떻게 해석될지, 여러 자잘한 이유가 마음을 꽁꽁 묶어둡니다. 소통을 위한 노력보다는, 내 자신이 허물어질 것부터 단속하지요. 그러고 나서는 그 자의식의 차단벽 너머에서 서로 좋으니 외로워하고 맙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0115일 방송>

 

2. 중국 고사에 人命在天이 있습니다. 이런 말 때문에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생명에 관한한 성경은 그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그 생명의 참된 가치를 찾아내고 발전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전도자는 한 가지 중요한 관찰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남다르게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 재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그 보다 못한 사람들 앞에서 힘들게 사는 모습을 말입니다. 흔히들 동창회라는 델 가보면, 학창시절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친구가 자기 분야에서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을 때,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고민을 한 듯합니다. 전도자가 찾은 답은 시기와 우연이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때가 되어 불행이 덮쳐오면 당하고 만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12절에서 자세히 풀이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액운이 닥치면 벗어날 길이 없다.”고 말입니다. 행복이나 불행이 오고 가는 것, 그걸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절대자에 대한 기대나 의지를 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 행복과 불행의 추를 옮겨다 주는 절대 힘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말합니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의 죽을 날을 알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이 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인명은 재천이다.”는 말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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