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996(2012. 4. 25. 수요일).

시편 144:9-11.

찬송 20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중국에 <트란도트>라는 공주가 있었어요. 예쁜데다가 공주이기까지 하니, 많은 남자들이 청혼해 왔습니다. 하지만 트란도트가 내는 괴상한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지요. 트란도트가 낸 세 가지 수수께끼란 이랬습니다. 첫 번째, 어두운 밤에 유령처럼 날아다니며 사람들 마음을 들쑤셔 놓고는, 아침이면 사라졌다가 밤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두 번째,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은 아니다. 그대가 패배할 때는 차가워지고승리를 꿈꿀 때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 목소리는 희미하지만 그대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소리는? 그리고 세 번째,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 그러나 그대가 뜨겁게 타오를수록 더욱 차갑게 어는 얼음. 그것이 그대를 종으로 삼으면 그대는 제왕이 되지. 그건 대체 뭘까? 대체 뭔지 모르겠습니다. 트란도트는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미워서 결혼하기 싫어서 일부러 괴상한 수수께끼를 냈지요. 그런데 알 수 없는 점은 그렇게 결혼하기 싫으면 독신을 선언하면 될 일인데, 굳이 수수께끼를 내서 멀쩡한 목숨을 빼앗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칼라프 왕자가 수수께끼를 모두 마치지요. 답은 희망 피, 그리고 트란도트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차갑고 냉혹한 트란도트가 원하는 것들이었지요. 그녀는 누군가 수수께끼를 풀고 다가오기를 바라는 희망을 가졌고, 그래서 자기에게도 사랑으로 따뜻한 피가 흘렀으면 좋겠고, 자기를 향해 트란도트!” 이름을 불러주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남자가 나타나자, 트란도트는 또 뒤로 물러서지요. 칼라프는 여유를 부리며 트란도트에게 자기 이름을 맞춰보라고 합니다. 트란도트는 필사적으로 그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서, 시녀 류를 고문하는데, 류는 사랑하는 칼라프를 위해 자결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트란도트는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뜨지요. 심리학자 곽금주 교수는 [도대체 사랑] 이라는 책에서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트란도트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트란도트 공주와 시녀 류를 동시에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한없이 조건을 내 세우는 차가운 면도 있지만, 사실은 열렬한 사랑에 빠지고 싶은 마음이 있고, 남자의 단점만 찾아내는 그 이면에는 목숨도 아깝지 않게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세상의 어떤 여자라도 내 안팎의 사랑을 뒤흔들어 놓을 사랑을 하고 싶은 건 똑 같다.” 똑 같다.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트란도트의 사랑은 트란도트의 또 다른 나, 류가 희생하면서 시작됐지요. 워낙 특별한 트란도트라서 그럴까요? 아니요. 아마도 모든 사랑은 그렇게 시작될 겁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기꺼이 스스로 희생하면서 그렇게.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38일 방송>

 

2.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다. 여러분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요한의 세례를 흔히 회개의 세례니, 죄씻음의 세례니 할 때는 더욱 더 질문이 생길 것도 같은데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세례 받으시려는 예수님을 거절하고 나섰다는 점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해당되지 않는 세례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 분, 회개할 것이 없는 주님이신 때문입니다. 그러나 굳이 고집을 부려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이 사람이심을 나타내심이라고 말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을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오해하는 이들에게, 이 보다 더 분명한 성육하신 주님을 증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타락한 인생과 당신을 일치시켰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선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1:31-34). 셋째는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의 모범이 되신 것입니다. 누구도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세례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왜 중요할까요? 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는 일이며, 그리스도의 공로로 다시 살아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 곧 그리스도인의 일상을 의미합니다. 매일 죄를 죽이고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보다 더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있을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저희 루터교회에서는 성호 긋기(sign of cross)를 하는데, 바로 이 세례를 기억하는 상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호 긋기를 할 때마다 내가 세례 받은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와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기를 갈망합니다.

 

3. 오늘은 강화도에서 요양 중인 교우를 심방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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