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076(2012. 7. 14. 토요일).

시편 18:30-34.

찬송 13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완전히 안다는 것은, 함께 하는 시간의 양에 상관없이 애초에 불가능 하다고도 합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때로 본인조차 모를 부분이 있어서 지요. 그런 사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끝내 가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거리로 느껴지게도 합니다. 그러니 정현종 시인은 <>이라는 짧은 시에 썼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사람들이 저마다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외롭고 고립되고 고독하다고 썼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고, 완전히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리 가까이 살거나 아무리 사랑해도, 오히려 저 사람에게는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아직 다 모르는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언제고 더 이해하고 더 알려는 노력과 겸손이 필요하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섬도, 오히려 외로움이나 고독 고립의 섬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메꿔주는 섬. 서로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징검다리의 섬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올해의 부부의 날인 오늘 만큼은, 부부끼리 연인끼리 서로 잘 모르고 있거나 무심했던, 좋아하는 색깔이나 무늬며 음식을, 좀 더 관심 있게 확인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521일 방송>b.

 

2.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마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소꿉놀이하던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왕이나 사또의 행차를 흉내 낸 소꿉놀이 말입니다. 말을 대신해서 어린 나귀새끼가 등장하고, 붉은 카페트 대신 가난한 사람들의 겉옷을 깔았고, 화려한 깃발 대신 종려가지를 꺾어서 흔드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제대로 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라는 구절입니다. 적어도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이 말은 예삿말이 아니었고, 왕의 행차에는 꼭 들어가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호산나!” 번역하면,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분명 왕의 행차는 아니었고, 아이들의 소꿉장난 같은 이 일화는 그 때의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 모든 인생에게는 참된 왕의 행차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암시 말입니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왕의 행차를 제대로 알아볼 사람이 그리 많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철부지라고 부르는 어린 아이들은 그 의미와 중요성을 눈치 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귀를 타신 겸손하신 왕 그 분만이 우리를 구해주실 바로 그 분이시라고 말입니다. 그 때의 예루살렘 시민들은 정치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고단함 그리고 풀길 없는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할까요? 물질의 노예에서 자유하고 싶을지 모릅니다. 물론 꼬집어서 그 핵심을 꿰뚫어보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그래서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처럼 살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아름답게 이어주는 윤리와 가치를 더 이상 내팽개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천국에서 살아갈 그 바른 몸짓을 생각하는 때문에 말입니다.

 

3. 의정부 영락교회 강습회에는 멀리 제주도에서 참가하신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배우는 일에 열정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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