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21(2012. 8. 28. 화요일).

시편 29:10-11.

찬송 51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에는 꽃가게에 들려서 오늘 어떤 꽃이 들어왔나 구경하는 것도요, 소소한 재미입니다. 해마다 새로운 품종의 꽃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요, 신기하기도 하고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지런히 새로운 꽃을 개발하고 있을 누군가의 성실함에 고마운 마음도 듭니다. 초록색의 잎사귀와 형형색색의 꽃들을 보고 향기까지 맡으면, 저도 모르게 몸도 마음도 편안해 지고 즐거워집니다. 이런 느낌은 과연 근거가 있을까요? 음악치료와 미술치료처럼 최근에는 원예치료가 대체 의학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원예치료사가 본격적으로 양성돼서, 병원과 복지 기관 등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식물을 질병의 치료도구로 이용하는 원예치료는 주로 야외에서 식물을 직접 가꾸는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해요.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먼저 향기치료입니다. 화초마다 다르게 나는 향기는 저마다 다른 효능을 가지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프레지아 향기는 혈압을 낮춰주고, 천리향의 향기는 스트레스로 인한 위통을 완화시켜준다고 합니다. 여기에 꽃마다 지닌 다양한 색으로 색채 치료도 가능하고요. 여백의 미를 살릴 은은한 색조의 동양식 꽃꽂이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증가하는 델타파를 감소시키고요. 다양한 색상과 질감을 표현하는 서양식의 꽃꽂이는

   심리상태가 안정될 때 발생하는 알파파를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또 재활이 목적일 때는 물주기와 가위질을 통해서 손의 힘을 기를 수 있고, 또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은 파종부터 수확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데요. 뭐 막연하게 꽃과 식물이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준다고 생각은 했지만요, 이렇게 다양한 효과가 있는 정말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원예치료는요, 집안에 좋아하는 식물 화분 몇 개 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관리가 소홀해도 잘 자라고 색과 향이 특이한 식물을 기르는 게 좋다고 하네요. 오감을 자극하고 심신을 안정 시켜주는 원예치료, 오늘부터 나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선물해 보면 어떨까요? 특히 가족과 함께 한다면, 공통된 대화 주제도 하나 더 늘 수 있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511일 방송>

 

2. 가끔 이런저런 자리에서 꺼내는 얘기입니다만, 오늘 본문과 같이 두 단락(paragraph) 이상의 설교 본문을 잡지 말라고 합니다. 설령 어쩔 수 없이 그런 본문을 가지고 설교할 경우에는, 가능하면 그 중의 한 단락을 선택해서 설교하는 게 좋겠다고 말입니다. 대체로 하나의 단락으로 하나의 주제를 잡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는 단일한 주제에 집중하지 않으면 듣기가 힘들 테니까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저의 묵상은 첫 번째 단락(22-30)을 택하였습니다. 배경은 세례 요한이 유대 왕 헤롯에게 붙잡혀 가기 얼마 전이었으며,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듣기 거북한 얘기를 한 제자가 꺼냈는데, 세례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라는 분에게로 옮겨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 제자의 그 얘기를 듣기가 무섭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어떻게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조(自嘲)섞인 말처럼 들리는 말은 아닙니까? 아니면 누군가를 높여주고 싶을 만큼 열린 마음의 위인으로 생각 되는지요. 아무튼 당시 형편을 생각한다면, 세례 요한은 이미 종교계 지도자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었고, 그에 비해서 예수님은 막 공생애를 시작한 때였으니까, 보기에 따라서는 경쟁자의 관계라고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경쟁자를 두둔하기는커녕 폄하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당연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달라도 너무 다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경쟁 상대를 높여 주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한없이 낮추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이런 세례 요한의 태도는 그의 자기 인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끝 모를 신분 상승을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세상의 물결과는 달리, 오직 자신의 소명(召命)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자기 인식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소명을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요?

 

3. 태풍 볼라벤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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