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23호(2012. 8. 30. 목요일).
시편 30:4-6.
찬송 39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세계 환경의 날 인데요. 지금까지의 환경보호운동은 대부분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모든 걸 줄이고 덜 하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생지를 쓴다고 나무와 숲이 온전히 보호되는 것도 아니고, 재생 과정에서 또 다른 오염물질이 심각하게 비출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재활용이라고 말하는 대부분이 환경오염을 좀 늦출 뿐 진정한 근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거지요. 이런 지금까지의 환경운동에 전면적으로 반기를 들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건축가 윌리엄 멕도너와 화학자인 미하일 브라운 가르터입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환경보호운동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요람에서 요람으로”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이 제목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책을 특수 소재인 폴리머로 만든 것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폴리머는 쉽게 찢어지거나 물에 젖지 않고, 완전 재생이 가능하며 영구 보존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어떤 물건을 만들 때, 처음부터 완전 재생이 가능한 것을 목적으로 디자인하자는 거지요. 예를 들어서 합성섬유가 아니라 볏짚으로 카펫을 만들면, 쓸 만큼 쓴 뒤에 마당으로 던지면 비료가 되지요. 이런 아이디어는 낙엽이 썩어서 나무의 영양소가 되는 것처럼, 사실상 쓰레기가 전혀 없는 자연에서 얻었다고 하는데요. 범위를 넓히면 전자제품 속의 수많은 부품도 영구 순환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해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워낙 거대한 프로젝트라서 엄두가 안 나겠지만요, 조금씩 현실화 시키는 기업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다국적 기업인 한 스포츠화 업체는 신발을 신다가 버리면, 비료나 퇴비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인데요. 현재는 그 전 단계로써, 폐기처분된 신발을 분리한 다음, 잘 분쇄해서 스프츠 활동을 위한 트랙이나 운동장 표면에 사용하고 있지요. 이렇게 영구 순환을 목표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산업혁명 이후 줄곧 환경을 해치는 주범으로 꼽혔던 공장들 그리고 그 기업들이, 오히려 환경운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극도의 이익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그 탐욕을 버린다면 말이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6월 5일 방송>
2. 우리 주변에는 종종 파격적이다 싶을 정도로 기행(奇行)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50년대 촌부처럼 수염을 길게 기른다든지, 양복 차림에 검정 고무신을 신는다든지 하는 것은 그래도 봐줄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우리 주님이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는 것도 모자라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청으로 이틀 밤이나 그들의 지역에서 주무셨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기행중의 기행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고매하다고 소문난 어느 목사가 술집의 작부들과 대작(對酌)을 했다는 것쯤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런 파행은 그 자체로 구설수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어쩌면 명예에 치명적인 흠집을 남길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각은 무뎌도 한참 무딘 것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어느 설교자도 이 점을 문제시하지 않고 너그럽게 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소명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소명에 근거할 때 너무도 당연한 일로 여기는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연관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의 보편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한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이런 불일치가 마치 정상(正常)인양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훗날 이런 점들을 묶어서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잘못된 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정죄했습니다(마 11:19). 이런 주님의 태도를 기행으로 보거나 문제시 할 것이 아니라, 너무도 소명에 일치하고 일관된 행위의 연속선상에서 보아야 하겠습니다. 삶의 진실성이란 이런 소명에 일치하는 연속성을 유지할 때라고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3. 오늘 오후까지 농아목회자들과의 성경공부는 끝이 납니다. 이런 세미나를 처음 참여하는 분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변 세계를 너무 모르고 살았음을 새삼 느끼는 기회였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38년동안 마음을 바꾸지 않은 사람. / 요 5:1-8. (0) | 2019.05.11 |
---|---|
편가르기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생각할 때. / 요 4:432-54. (0) | 2019.05.11 |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기를. / 요 4:1-26. (0) | 2019.05.11 |
세례 요한을 통해서 다시 배우는 자기 정체성. / 요 3:22-36. (0) | 2019.05.11 |
그림자를 통해서 실체를 확인하기. / 요 3:1-21. (0) | 2019.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