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71(2012. 10. 17. 수요일).

시편 39:12-13.

찬송 41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입니다. 이건 그만큼 세월이 빠르다는 뜻이라기보다도요, 미국의 시인 베로니카 에이 쇼프스트의 표현에 따르면, 이런 사건 한 가지만 일어나도 어린아이에서 금방 훌쩍 어른이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겪고 나면 다시는 그 일을 겪기 이전과 똑 같은 상태로 절대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막연하게 생기는데, 어쩌면 그 때가 바로 어른이 되는 전환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쓴 <잠시 후면>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잠시 후면, 너는 손을 잡는 것과 영혼을 묶는 것의 차이를 배울 것이다. 사랑은 기대는 것이 아니고, 함께 있음이 안전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님을 너는 배울 것이다. 잠시 후면, 너는 입맞춤이 계약이 아니고, 선물은 약속이 아님을 배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면, 너는 어린 아이의 슬픔이 아니라 어른의 기품을 갖고서, 얼굴을 똑 바로 들고 눈을 크게 뜬 채로, 인생의 실패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내일의 땅 위에 집을 짓기엔 너무도 불확실하기에, 오늘 이 순간 속에 너의 길을 닦아나갈 것이다. 잠시 후면, 너는 햇볕조차도 너무 많이 쬐면, 화상을 입는다는 사실을 배울 것이다. 따라서 너는 이제 자신의 정원을 심고 자신의 영혼을 가꾸리라. 누가 너에게 꽃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그러면 너는 정말로 인내하며 진정으로 강해지고, 진정한 가치를 너의 안에 지니게 되리라. 인생의 실수와 더불어 너는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리라.” 이렇게 잠시 후면 우리 앞에 일어날 일들. 그러나 어떤 이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슬픔으로 대하고, 누군가는 어른의 기품으로 대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울고, 누군가는 인생에 받아들여서 웃는 법을 배워나가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918일 방송>

 

2. 종교 개혁의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부단히 개혁해야 한다는 말은 루터의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말이어야 합니다. 특히 어떤 종류든 힘의 확장을 지향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라면, 더욱 더 개혁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분명한 한 가지 현상은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부패의 속도는 증가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후원자로 기도하는 한 단체가 <교회 개혁 실천연대>입니다. 매월 활동자료를 보내 주어서 우리 교회의 현실을 살피고 있는데, 얼마나 부패하고 얼마나 부끄러운지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입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한 일들이 우리 교회 안에서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 시던 말씀을 새삼 곱씹어 보는 요즘입니다. 그러니 교세를 자랑하는 것은 더욱 더 허망한 짓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썩은 신앙으로 무엇을 해 보겠다는 것인가 해서 말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온 바울 사도는 먼저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합니다. 교회 대표격인 야고보를 만나서, 그간의 선교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야고보의 충고를 듣게 됩니다. 이미 유대인으로 기독교인이 된 이들이 수만 명이나 되니,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온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점과, 그동안 바울 사도가 이방에서 가르친 내용들이 유대인의 율법에는 어긋나는 것들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모세의 가르침을 배반한 점, 할례를 금한 점, 조상들 대대로 지키는 전통들을 금한 점), 사도 바울이 율법을 충실히 잘 지키는 사람으로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서 결례를 행하고, 결례기간의 끝날에는 머리를 깎도록 권고합니다. 바울은 구차한 변명 같은 행동이지만, 그 충고를 따르게 됩니다. 이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있을 것입니다. 유대교 신앙과는 달리 기독교 신앙은 율법에 묶인 인간중심적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적 신앙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행위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 살아야 하고, 구원에 이른다는 신앙을 따라야 하는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결례를 행하는 등의

자기 변호를 할 수 밖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율법에 충실한 것은 모든 기독자들의 기본적인 자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 중심적 신앙은 매우 위험한 인본주의일 뿐입니다. 참고로 결례란 나실인들이 서원기간동안 하는 자신을 깨끗케 하는 행위 (독주를 금하고, 머리를 깎지 않으며, 시체를 멀리하는 것)를 말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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