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234호(2012. 12. 19. 수요일).
시편 57:4-6.
찬송 2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언니와 자신은 여행 데리고 다니기에 참으로 수월한 아이들이었다고, 키레스틴 기어는 회상합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아빠에게 목캔디도 입에 넣어주고, 선글라스도 닦아주고, 엄마의 손이 닿지 않는 등도 긁어주는 어린 딸들이었지요. 우리는 앞좌석을 발로 차지도 않았고, 끈적끈적한 것들을 먹다가 흘리지도 않았고, 신경도 곤두서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여행을 즐겼고, 그것이 바로 행복하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비밀이다. ‘가는 것이 곧 목적이다.’ 출발하자마자 아이들이 부모에게 던지는 가장 짜증나는 질문, ‘우리 언제 도착해요?’를, 우리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렇게 어려서는 여행을 좋아했던 아이는, 커서는 여행을 두려워하는 공포심이 많은 작가가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그냥 집에 있을 걸] 이라는 책을 씁니다. 하지만 사실 그 두려움이나 제목은 반어법적입니다. 글 내용은 그냥 집에 있을 걸 하는 생각이, 오히려 좋지 않음을 얘기합니다. 결국 출발하길 잘 했다는 내용입니다. 명절 귀향길에 고속도로는 항상 정체를 반복합니다. 차 안에서 평소의 두 세배의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올해 추석엔 그럴 때 키레스틴 기어의 가족을 떠올리면서, 가로 시작되는 동물 이름대기나 수수께끼 내기를 하거나, 노래를 불러도 좋을 겁니다. “언제 도착해요? 지루해요.” 같은 말 대신, 기어가 해 준 여행의 첫 번째 비밀, “가는 길이 곧 목적이다.” 라는 한마디를 서로에게 들려주면서, 가면 어떨까? 아무리 막혀도 “그냥 집에 있지 않고, 고향집엘 나서길 참 잘 했지” 이런 제목의 명절이 되셨으면 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9월 28일 방송>b.
2. 오늘 본문은 초대 교회를 어지럽히던 무리들에 대해서 경계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어느 시대나 진실된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사이비 지도자 역시 있게 마련입니다. 제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저의 눈에는 사명감을 가진 인격적인 선생님과, 보통 직업인으로써 선생님이 구별되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은 가르치는 일에서건 일상에서건 진심으로 학생들의 장래를 생각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때론 힘들게 하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잔소리와 꾸중이었습니다. 그래서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분들을 고맙게 듣기로 했습니다. 말씀하시는 분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그걸 참고 애써 말씀하시는 까닭은, 순전히 학생들을 바르게 인도하려는 분명한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초대교회에도 역시 거짓 교사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단적인 주장을 끌어들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주님을 부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순진한 교인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요? 그들은 인간의 이성을 활용합니다. 예수님의 성령 잉태설을 부인하고 사생아 취급을 한다든지 하는 경우입니다. 이렇듯 이성적인 잣대로 성경을 읽는다면 모순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목적은 무지몽매한 맹신자들을 일깨워서 제정신을 차리게 하겠다는 뜻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런 이단 주장으로 이득을 볼 의도가 있고, 그 결과 호색을 일삼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제 멋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를 남기고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일이나, 롯의 네 식구를 남기고 그 큰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신 일을 예로 들면서, 흔들리는 신앙을 굳게 잡아주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역시 깨어있는 신앙생활의 중요성을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딘지도 모르게 도도하게 흘러가는 물결에 육과 영을 떠맡기는 그런 신앙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대상이 누구며 무엇을 그 내용으로 하는지, 기독교 신앙의 기본에 충실한 생활이 절실하다고 말입니다.
3. 오늘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저의 가족은 일주일 전에 부재자 투표를 하였는데,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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