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20호 (2013. 3. 15. 금요일).
시편 시 78:12-17.
찬송 45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하면, 역시 봉이 김 선달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봉이 김 선달은 봉이 김 선달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어느 것도 그의 진짜 이름은 아니라는 거지요. 본명은 김 인홍입니다. 선달은 과거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하지 않았을 때 붙이는 칭호인데요. 김 인홍은 평양 출신으로 장원급제를 하고도 벼슬을 얻지 못했습니다. 조선 후기에 서북인 차별 정책 때문이었지요. 품었던 뜻을 세상에 펼치지 못하게 되자, 그는 번뜩이는 기지로 권세 있는 양반과 부유한 상인, 위선적인 종교인들을 골탕 먹이면서, 세상을 휘젓기시작하는데요. 그렇다면 이름 자 앞에 마치 별호처럼 붙은 봉이는 어떻게 얻어진 걸까요. 하루는 김 선달이 장 구경을 하다가, 닭을 파는 가게 옆을 지나게 됐습니다. 마침 닭장 안에는 유달리 크고 모양이 좋은 닭 한 마리가 있어서, 주인을 불러 이 닭이 봉이 아니냐고 물었지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새 중의 왕이라고 불리는 봉황은 수컷의 이름과 암컷 수컷의 이름이 합쳐진 것인데요. 수컷이 봉이고 암컷이 황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봉황이 실제 새가 아니라, 상상 속의 새라는 점입니다. 김 선달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계속 묻자,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던 닭장수가 봉이 맞다고 대답을 합니다. 김 선달은 여섯 냥이나 주고 닭을 삽니다. 누가 봐도 어리석은 행동이었지요. 그런데 그는 한술 더 떠서 속아서 산 닭을 가지고 사또에게 달려가서 봉이라고 바칩니다. 사또로써는 당연히 기분이 나빴겠지요. 세상 어디에도 봉은 존재하지 않는 새니까요? 화가 난 사또가 김 선달의 볼기를 칩니다. 그러자 김 선달은 억울하다는 시늉을 하면서, 닭장 수에게 속아서 샀다고 하고, 마침내 닭장수가 끌려옵니다. 닭장수로써는 달리 둘러댈 변명도 없었지요. 김 선달의 꾐에 넘어간 것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닭을 봉이라고 속여서 팔았으니까요. 결국 김 선달은 닭장수에게 닭 값은 물론 볼기를 맞은 배상까지 쳐서 모두 100냥을 받습니다. 여섯 냥을 주고 100냥을 받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봉이 김 선달이라고 불렀는데요. 이 얘기를 들으면 떠오르는 또 다른 말이 있지요. 바로 '봉 잡았다.' 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봉도 봉황의 봉인데요. 상서로운 새를 잡다니 매우 귀하고 훌륭한 사람이나 이를 얻었다 라는 뜻이지만요, 때로는 봉이 김 선달의 이야기처럼 속이기 좋고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같은 봉황이라도 '봉 잡았다'는 말은 운수 좋다는 뜻으로 통하지만요, '황잡았다' 라는 말은 운수 나쁘다는 말로 통합니다. 봉은 수컷이고 황은 암컷이기 때문인데요. 뿌리 깊은 남아 선호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2월 12일 방송>
2. 제가 참 좋아하는 본문을 읽게 되어서 기쁩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희망적인 모습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어느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유명인들의 건강 정도를 측정해서 순위를 매겨주고 있었습니다. 건강이 가장 나쁘다고 판정된 한 연예인이 자신의 흡연 문제를 고백하면서, 앞으로 담배를 피우면 양 뺨을 때려달라고 결연한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수차례 금연 계획도 세우고 가족들에게는 약속도 했을 것입니다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가 약하다는 것을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흡연 문제는 아닐지라도, 우리 역시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살아왔을는지 모릅니다. 매일 영어 단어 10개씩 외울 것을 결심하던 중학생 시절, 고등학생시절 내내 계속되다가 포기하고 말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들은 밖에 있는 어떤 원수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들 안에 터를 잡고 세력을 행사하는 온갖 약함 들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미루는 생각이며, 쓸데없는 탐욕이며, 분수 모르는 자만심이었고, 진실하지 못한 허세와 자랑이었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어디에서 생겨났고, 어떻게 활동하는지 잘 알 수가 없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처연한 느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런 우리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를 향해 넘치도록 부어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복된 사람일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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